지난해 7월 도입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올해를 끝으로 결국 폐지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시행 이후 지금까지 대출 실적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실효성이 낮고,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도 달라진 까닭이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내달 중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관련 자금 계속 지원 여부를 심사한다.
이 펀드는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들 회사에 자금을 투입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에 대비해 박근혜정부에서 도입됐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을 제시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해 국책은행 자본확충, 주택담보증권(MBS) 매입 등을 하자는 게 핵심이었다.
한은은 이 방식이 중앙은행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며 강력 반대했다. 특히 한은의 국책은행 직접출자 방안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논란 끝에 이주열 한은 총재가 2009년 시행했던 ‘대출’ 방식을 제안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해 총액 11조원 한도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출범했다.
국책은행이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 한은 금통위가 건별로 심의·의결해서 도관은행인 기업은행을 통해 대출을 집행하는 ‘캐피털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얼개가 짜였다.
대출기간은 건당 1년 이내로 정해졌고, 계속 지원 여부는 매년말 금통위 논의로 결정키로 했다. 대출실행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로 정했다. 금통위가 재연장을 의결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끝난다.
지금까지 관련 대출 실적은 ‘0’이다. 자금 수혈이 급했던 수은은 올해 초 정부 재정에서 2조원을 출자 받았다. 산은도 한진해운 파산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자금 여력이 있어 대출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출 당사자인 수은과 산은이 자본확충펀드를 이용할 실익이 매우 낮았다. 한은은 무분별한 지원 요청을 막기 위해 자본확충펀드 대출에 실세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책은행이 직접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보다 이자 부담이 더 많도록 설계한 것이다.
2009년 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 시기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한은은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펀드 출범과 동시에 3조2966억원의 대출을 즉시 집행했고, 적용금리도 시장금리(은행채 AAA)보다 1.14%포인트 낮게 책정했다.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 만기도 2014년까지 5년간 연장했다.
금통위 내부 기류는 제도 연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주열 총재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고, 중앙은행 개입은 최소화해야 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한 금통위원은 “중앙은행 원칙상 기존에 한은이 수은에 출자한 금액(1조1650억원)도 회수해야 맞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 출범도 변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은 통화정책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이고, 구조조정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최근 자본확충펀드 관련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권에서도 자본확충펀드 무용론과 폐지론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발권력 동원에 신중했던 한은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내달 금통위 전체회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진행 상황을 보고 정부와 협의할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