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8590원 대비 1.5% 오른 8720원으로 결정됐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보다 낮은 역대 최저 인상 폭이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경제 위축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최임위 결정을 보이콧하면서 노동계와 정부 간 전면전을 예고했다.
14일 최임위는 내년도 최저임금 1.5% 인상안을 두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9표, 반대 7표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근로자위원 9명이 모두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공익위원 9명이 찬성, 사용자위원 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내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82만2480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공약'에 따라 2018년, 2019년 10% 넘게 올랐던 최저임금은 올해 2.87% 인상에 이어 내년에도 속도 조절을 이어가게 됐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가팔랐다는 지적과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결과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폭은 최저임금 첫 심의가 있었던 1989년 이래 가장 낮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직후인 1999년(2.7%), 2010년(2.75%)과 비교해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최임위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이 최초로 제시했던 내년도 최저임금 요구안을 놓고 보면 사용자위원에 기운 금액이다.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의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각각 올해 대비 2.1% 내린 8410원, 16.4% 오른 1만원이었다.
이날 최저임금 심의와 표결은 근로자위원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측 위원이 빠진 채 진행된 반쪽짜리였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위원이 최저임금 삭감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날 심의 시작부터 불참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최저임금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정해졌다. 공익위원은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자 전날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했다. 노사가 내년 최저임금을 8620원~9110원 사이에서 합의해달라는 주문이다. 인상 폭으론 올해 8590원 대비 0.35~6.1% 오른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위원은 0.49%, 0.52% 인상안을 연이어 꺼냈다. 반면 회의장을 지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측 근로자위원은 6.1% 인상안으로 맞섰다. 공익위원은 표결을 실시하기에 앞서 공익위원 단일안을 도출해달라고 노사 요구에 따라 1.5% 인상안을 내놓았다. 한국노총은 공익위원안을 확인한 직후 최저임금 회의장에서 퇴장하고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역대 최저 인상 폭 1.5%는 올해 물가 인상률 전망치 0.4%, 경제성장률 전망치 0.1%,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 1.0%를 더한 수치다. 공익위원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증대보다 일자리 유지가 더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이 가장 먼저 조정하는 게 노동력"이라며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때 발생하는 일자리 감축이 저임금 노동자 생계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봤다"고 말했다.
박준식 최임위 위원장은 외환위기 때보다 최저임금 인상 폭을 더 낮게 책정한 데 대해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인구구조, 산업구조 등 경제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절대값을 가지고 평면 비교하는 건 무리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강력 반발했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공익위원은 스스로 최저임금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며 "공익위원은 지난해에 이어 사용자위원 편을 들면서 편파성을 만천하에 보여줬고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회의 참여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결정을 계기로 노동계의 하반기 대정부투쟁이 본격 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