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국채 사준다고?…"가뜩이나 뛴 물가 더 오를라"[이지경제]

세종=안재용 기자, 김주현 기자
2022.02.19 08:55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으로 출근하면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관련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정부가 정치권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규모 확대 요구에 대해 2조원 증액안을 제시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행이 지난 4일 발표한 국고채 단순매입 규모(2조원)와 일치하는 숫자라 '재정의 화폐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의 화폐화는 위기시 손쉽게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물가상승과 중앙은행 신뢰성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18일 정치권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추경 편성규모를 2조원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여야 정치권은 최소 35조원, 최대 54조원 규모로 추경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물가상승과 국채시장 교란 등을 이유로 대규모 증액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안 증액규모가 한은의 국채 단순매입 규모와 일치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은이 발권력을 통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4일 2조원 규모의 국채 단순매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금리 변동성 확대에 대응한 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은이 국채 단순매입을 실시한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8개월만이다.

한은은 통상 초단기금리(1일물)또는 RP(환매조건부채권) 금리(7일물)를 통해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경제위기가 아닌 정상적인 상황에서 채권은 만기가 짧을수록 이자율이 낮고 만기가 길수록 이자율이 높다는 특징을 갖는다. 중앙은행은 만기가 가장 짧은 채권금리를 조정해 만기가 긴 채권의 금리에 영향을 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한은이 실시한 국채 단순매입과 같이 3·5·10·20년물 등 비교적 장기채권을 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은 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거나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경제위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매입 프로그램을 실시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증세 등 수단에 비해 저항이 적고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돼 위기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물가상승을 불러일으키고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재정확대를 채권매입을 통해 뒷받침하는 경우 늘어난 지출 규모만큼 통화량이 증가한다. 통화량 증가가 곧바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급망 위기 등으로 공급측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최근 경제상황에서는 빠른 속도로 물가를 올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법에서는 물가안정을 한은의 목표로 두고 있다. 통화량 등을 조절해 적정수준의 인플레이션(물가의 지속상승)을 유지하는 것이 기관의 제일 중요한 목표란 뜻이다. 그런데 물가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재정확대를 발권력을 통해 뒷받침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한은의 정책을 시장이 신뢰하지 않게 될수도 있다. 중앙은행의 주요 정책수단이 구두개입 등을 통해 시장 참여자의 기대를 조절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은은 국채 단순매입이 추경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은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내고 "일부에서는 추경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당행의 국채 매입이 정부부채의 화폐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데, 당행은 단순매입을 통해 추경을 뒷받침할 계획이 없다"며 "당행의 국고채 단순매입은 국채 발행물량을 기조적으로 인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통시장에서 일시적 시장 불안심리, 금리 변동성 등에 대응하는 조치인 점을 명확하게 밝힌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즉시 매입하는 직매입의 형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추경 증액분과 같은 규모의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은 시장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한은의 주요 정책수단인 기준금리 인상효과도 약화시킬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정부 부채의 화폐화라고까지 보기는 어렵지만 (국채 단순매입이) 물가안정 목표달성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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