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사랑'은 진심이다. 보편관세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경제 비상상태' 선포까지 고려할 정도다.
보편관세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는다. 당장 미국과 함께 '쓰리 아미고스'(Three amigos·세 친구)라 불리는 캐나다와 멕시코부터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취임과 함께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며 '세 친구'의 우정에 균열을 가했다.
관세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 슬로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의 핵심 정책 도구다. 배경엔 미국 우선주의가 있다. 과거 두차례 세계대전 이후 형님 역할을 자처하며 세계화를 주도하는 동안 미국의 무역적자는 쌓여간데 반해 그 과실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따 먹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관세는 미국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 국제경제연구소(CEPII)의 '트럼프 2.0 관세 : 세계 경제는 어떤 대가를 치를까' 보고서에 따르면 보편관세와 대중 고율관세가 적용되고 상대국이 맞보복할 경우 세계 GDP(국내총생산)는 0.5% 위축되고 미국 GDP도 1.3%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보편관세는 인플레이션을 키울 수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이민자 대량 추방과 관세가 겹쳐 노동력 및 상품 공급이 동시 위축될 경우 2028년까지 미국 경제가 예상치보다 3~10% 위축되고 누적 인플레이션이 13~23%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를 포기하지 않는 건 반대급부로 얻는 게 더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먼저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 제조업 보호 △무역불균형 해소 △일자리 창출 △미국 내 수입경쟁 산업 보호 등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것(관세)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통상 정책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관세를 높임으로써 상대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1기 집권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를 앞세워 2020년 중국과 체결한 1단계 무역협정에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및 기술이전 강요 방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정치적 효과도 상당하다. 관세가 러스트벨트(제조업 사양화 등으로 불황을 맞은 미국 중서부 및 북부 일부지역) 중심의 반세계화 정서를 지닌 미국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데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 스스로 "관세는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 이외의 것을 얻는 데도 매우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집권 때도 관세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렀다.
2018년 2월 무역법 201조를 근거로 태양광 셀/모듈에 4년간, 대형 가정용 세탁기와 부품에 3년간 세이프가드(긴급수입금지조치)를 부과해 관세를 올렸다. 2.5GWh를 초과하는 태양광 셀/모듈 수입 물량에 1년차(2019년 30%)부터 4년차(2022년 15%)까지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대형 가정용 세탁기에도 유사한 관세율 쿼터에 따라 20~50%의 추가관세를 매겼다.
또 2018년 3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에 철강(25%)과 알루미늄(10%)에 대한 추가관세를 물렸다. 아울러 무역법 301조를 통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전방위적 고율 관세부과 조치를 1~4차에 걸쳐 실시했다.
한편 미국의 관세는 독립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번의 전환기를 겪었다. 1789년 첫 도입된 관세는 정부재정 확보 수단으로 활용됐다.
19세기 초엔 자국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다만 농업 중심의 남부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북부 지역 간 관세 갈등이 불거졌고 이후 관세는 하향 추세를 보였다. 이어 1929년 대공황 당시엔 스무트-홀리법을 통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글로벌 무역 전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관세 장벽은 크게 낮아진다. 미국은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 구축을 위해 국제무역을 촉진하고 관세를 낮추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3년 뒤엔 미국을 비롯한 23개국이 모여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체결한다.
그러나 2010년대 트럼프 당선인이 등장하며 미국 관세정책은 다시 대전환기를 맞게 됐다. 블룸버그는 "1930년대 당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관세 인상과 자국 통화가치 절하 등 자국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근린 궁핍화' 정책을 펼치면서 세계 무역이 위축됐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1930년대와 유사한 일방주의적 경제 어젠다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