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국내 농가 호수는 97만3707호를 기록했다. 103만5193호에 달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6.3% 감소했다. 농업인의 고령화, 젊은 층의 도시이동이 가속화되면서 농가 100만호는 이제 '옛 말'이 됐다. 무엇보다 농가소득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4년 2인 이상의 가구원으로 이뤄진 농가 평균소득은 5059만 7000원, 농업소득은 957만6000원에 그쳤다. 넘어야 할 산은 많고, 풀어내야 할 숙제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중 하나가 바로 일반 농가를 대상으로 한 'AI(인공지능)기반의 경영혁신 컨설팅' 활동이다. 국내 많은 소농들은 지금까지 농가 경영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한 전략수립에 익숙하지 못했다. 날이 궂으면 궂은대로, 시장상황이 좋지 않아 매출이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받아 들였다. 그새 대기업들의 시장장악과 횡포에 소농들의 경쟁력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농촌진흥청이 올 초 'AI기반 경영혁신 전문 컨설팅 지원단'을 발족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 것도 이같은 배경과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농업경영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진단하는 것은 물론 농가에 정확한 처방을 제공함으로써 농업 소득향상을 돕겠다는 것이다.
최근 컨설팅 지원단이 찾아간 충남 서산시 봄감자생산 농업경영체는 지금껏 관행대로 가축분 퇴비를 거름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다른 경영체보다 가축분 퇴비 사용량이 과도하게 많다는 점이다. 실제 농업소득이 상위 10%인 봄감자 농가의 퇴비 비용보다 2배(40만3000원/10a)를 지출하고 있었다. 컨설턴트는 이 농업경영체에게 진단결과를 설명하며 토양검정에 따른 적정량의 퇴비를 사용할 것을 조언했다.
적정량의 퇴비가 사용되면 10a당 퇴비 비용 20만원을 절감할 수 있어 전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또 과다한 퇴비사용으로 인해 감자의 형태도 일반 감자와 달라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 때문에 품질은 멀쩡한데도 감자가격은 일반 농가의 절반(1136원/kg)밖에 받지 못했다. 컨설팅 결과, 토양검정 및 적정시비 만으로 비료비를 연간 1000만원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일 같은 지역인 서산시 지곡면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목격됐다. 생강 등 다품목을 경작하고 있는 소농 한만영씨(52)와 농진청 컨설팅 지원단의 만남이었다. 이날 이들의 상담은 생강농사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한 대표님은 1980㎡(600평 규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데 저희들이 준비한 300평당 총수입 경영비 소득자료를 보면 소득 상위 10% 농가들에 비해 당연히 적고, 전국 평균소득과 비교할 때도 소득이 낮았다. 출하방식, 재해대응 기법 등 경영을 좀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표님이 조금만 경영을 개선하면 300평당 100만원씩 더 벌 수 있고, 600평이면 200만원이 되는 거죠."(농진청 농업경영혁신과 정재원 농업연구사)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유. 하하" 높은 소득을 기록한 다른 농가들의 사례에 그동안 표정이 어두웠던 한 대표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거리를 두었던 컨설턴트 쪽으로 몸을 당겨 한 뼘 정도 가까이 가져갔다.
농진청 농업경영혁신과 정재원 농업연구사는 "농업경영 데이터와 AI의 결합으로 진단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게 큰 장점"이라며 "진단결과가 농가의 문제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 컨설팅 내용에 대한 수용도가 꽤 높다"고 했다.
'AI기반 경영혁신 컨설팅 지원단'은 농진청 소속 4개 과학원(농과원·식량원·원예원·축산원) 기술지원과 경영담당자와 지방 농촌진흥기관(충남도농업기술원 등) 소득조사 담당자로 구성됐다. 중앙·지방 농촌진흥기관이 협업체계를 구축해 농가 수요가 높은 경영·재배 기술 등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있다.
농진청은 이를 위해 올 해 농산물소득조사에 참여한 117개 작목, 5400호 농가중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50호 농가를 우선 선정해 4월부터 순차적으로 전문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발표된 농산물소득조사(117개 작목)와 농업경영표준진단표(122개 작목), 주요 농산물 소비 경향, 출하 전략 등 방대한 자료를 AI를 통해 활용·분석한 뒤 이를 해당 농가에 경영활동 참고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농가에 정확한 경영진단 및 처방을 제공하기 위해 네이버클라우드 등 민간과 협력해 '농업 AI 에이전트 서비스'도 개발하는 한편 농업분야 AI전환에 본격 대응하고 있다.
농진청은 AI기반의 경영 컨설팅 활동이 농가 농업소득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2026년부터 전국 농가 1000호를 대상으로 컨설팅 지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은 "급격히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맞춰 AI를 활용한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 농업인 경영 역량 강화는 물론 생산자·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생태계 구축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