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에도 산재 사망자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산재 예방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측면도 있지만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장기 추세로도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457명으로 전년 대비 14명(3.2%) 증가했다. 특히 건설업과 도·소매업 등에서 사망자가 늘었고, 대부분 영세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재 예방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사망자는 오히려 더 늘어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복되는 산재 사고에 대해 "(기업이 산재를 방치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고 말하며 엄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도 산재를 줄이지 못하면 직을 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통계는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지난 9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영세사업장 지원과 동시에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과징금·영업정지 등 처벌 강화 방안을 내놨다. 아울러 소규모 건설현장과 도·소매업 대상 전국 집중점검을 실시하고, 지방 노동관서·자치단체와 합동점검 등 대응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산업현장에서는 사망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울산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사망 7명), 삼성전자·포스코 산업현장 사망 등 대형 사업장에서 사고가 이어지면서 올해 전체 산재 사망자는 전년 대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김 장관은 최근 간담회에서 "산재 줄이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산업계는 처벌 강화 일변도의 정책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건설노동자의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 등 구조적 위험 요인이 방치된 상황에서 처벌만 강화해도 예방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이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262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정부 대책 내용을 알고 있는 222개 기업 중 73%는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예방보다 사후처벌 집중(57%) △근로자 책임 강화 없이 권리만 강조(24%) △현장 안전관리 부담 가중(11%) 등을 꼽았다.
노동안전 종합대책 중 처벌 관련 주요 내용은 △연간 3명 이상 산업재해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 과징금 부과 △반복적으로 산재가 일어나면 인허가 취소 추진 등이다.
응답 기업의 44%는 과징금 등 경제제재 강화가 큰 부담이라고 봤다. 이어 기업 10곳 중 8곳(76%)은 사망사고 발생 시 현행 사업주 및 기업 처벌 수위에 대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류현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기업들의 이 같은 인식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실효적인 처벌로 기업이 산재 발생에 대해 부담을 느껴야 산재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산재 감소를 위해선 사전예방과 지원 중심의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정부와 국회는 엄벌주의 정책 기조를 지양하고 안전규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법령 정비 등 사전예방 중심으로 정책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