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오일 쇼크' 망령이 경제에 드리운다. 중동 국가들의 잇단 원유 생산 감축으로 국제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국제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국내 소비를 위축시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한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30분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900.65원으로 전날보다 5.33원 올랐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1900원을 돌파한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본격화 한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기름값 급등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이다. 이미 원유 수출길이 막힌 걸프 국가들은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중동 전쟁은 과거에도 전세계적인 유가 급등과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불어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고물가에 직면한 국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를 상회하고 이 중 90%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한국 역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 유가가 오르면 시차를 두고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당장 고유가에 따라 수입물가가 오르면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을 통해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높아진다. 이는 결국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 등으로 전이돼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 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비용이 높아진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물가 부담이 높아진 국민들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내수를 뒷받침하는 투자와 소비라는 양대 축이 모두 흔들리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내외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과 같은 국제유가 100달러 유지 시나리오에선 경제성장률이 최소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제활동을 위해 소비되는 원유랑이 훨씬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며 "국제유가 상승 시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에 더 쉽게 노출되고 수입 급등으로 경상수지 감소가 동반되면서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은 2024년 기준 GDP(국내총생산) 대비 원유소비량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 중 1위다.
더 큰 문제는 중동 사태로 인해 전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고착화할 경우 해외 시장 수요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우리 수출 경기도 더 크게 하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를 때 우리나라 수출은 0.39%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한국 경제를 이끌고 이는 반도체 수출이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는 생산을 하려면 전력 소비가 큰 산업인 만큼 에너지 가격 급등 자체가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 지금과 같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정부의 경기 대응이 빨라질 수 있단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주 본부장은 "올해 상반기 경제 충격이 가장 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산의 조기 집행 비중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