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첫날부터 원청을 대상으로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가 빗발치면서 현장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수많은 하청 노조들의 교섭요구에도 사용자성 여부나 교섭단위 분리 기준에 따라 원청의 교섭의무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이 시행된 첫날인 지난 10일 하루에만 407개 하청 노조·지부·지회에서 221개의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했다. 개정 노조법에 따라 하청 노조도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교섭요구를 받은 원청은 현대차, 포스코, 한화오션, 쿠팡 등 대기업부터 대학교(연세대, 고려대), 공공기관(서울교통공사, 한국철도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까지 다양하다. 하청 노조들은 임금, 안전, 처우개선 등 다양한 부문에서 원청과 교섭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면 수많은 하청 노조들의 무제한 교섭요구로 인해 기업들은 1년 내내 노조들과 교섭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우려했던 것처럼 제도 시행 첫날부터 수백건의 교섭요구가 밀려들면서 기업들도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하청 노조가 교섭요구를 한다 해도 원청 기업이 무조건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정 노조법에 따르면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시간이나 근로여건, 임금 등 특정한 분야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해당 분야에 대해서만 사용자로 인정된다. 하청 노조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때에도 원청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부문에 대해서만 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
예를들어 다단계 하도급 구조하에서 원청 기업과 하청 기업의 도급계약에 따라 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결정될 경우 하청 노조는 원청에 대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관건은 사용자성에 대한 판단이다.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는 기업과 노조의 판단이 다르다. 원청은 사용자성을 부인하며 최대한 하청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하청 노조는 실질적 지배력과 상관 없이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개정 노조법은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중립적인 중재 기관을 통해 노사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차원이다. 노동위는 최근 노동부가 마련한 해석지침과 각종 판례 등을 근거로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교섭단위 분리 여부도 노동위에서 판단한다. 하나의 원청을 상대로 복수의 하청 노조가 교섭요구를 하더라도 하나의 교섭단위로 묶이면 창구단일화를 해야 한다. 무제한 교섭요구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개정 노조법 시행 첫날에는 노동위에 31건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접수됐다.
노동위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원청은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교섭을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노동부는 노동위 판단 전에라도 사용자나 노동자가 자체적으로 사용자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전문가 자문기구인 '단체교섭 판단지원 위원회'를 운영한다. 판단지원위의 유권해석은 구속력이 없으나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노사 간 자율에 의한 교섭을 촉진시킬 수 있다.
개정 노조법이 시행 초기인 만큼 사용자성 여부와 쟁의의 범위 등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경영계는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과도하게 인정할 경우 무제한 교섭요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위가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 중 몇 건에 대해 사용자성을 인정했는지는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야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며 "노동위와 잘 협의해서 어떤 기준으로 교섭단위 분리 등을 판정했는지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