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여전히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제정되며 영구처분 부지 선정을 위한 첫걸음을 뗐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의 불안감은 "이러다 이곳이 영구 핵무덤이 되는 것 아니냐"는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반면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스웨덴은 지난해 1월 수도 스톡홀름 북쪽의 외스트함마르 시 포스마크 부지에서 세계 두 번째로 고준위 방폐장 건설의 첫 삽을 떴다. 1980년대 초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웨덴이 어떻게 2045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확충하는 기조로 돌아서고 가장 까다롭다는 방폐장 착공까지 갈등 없이 완수했을까.
해답을 듣기 위해 25일 스웨덴의 파비앤 죠베르그 외스트함마르 시장과 고준위방폐물관리기관 SKB의 자회사인 'SKB Nu'의 스티그 비요른 최고경영자(CEO)를 서울에서 만났다. 스웨덴은 고준위방폐물 처분 책임이 방폐물 발생자에게 있어 원전 발전사업자가 공동으로 SKB라는 독립 관리기관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SKB는 주민 수용성의 핵심으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스티그 비요른 CEO는 "1995년 아스포지하연구시설(HRL)을 시작한 이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왔다"며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연구소에 와서 실제 화강암반을 만져보고 방폐물을 보관할 구리 캡슐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기술과 실험 과정, 국제기구의 검증 결과까지 철저하게 독점 없이 공개하는 '투명성'이 막연한 공포를 지웠다는 설명이다.
현재 포스마크 부지는 기존 중·저준위 시설 확장과 함께 고준위 처분장을 짓기 위한 지상 표면 정지 작업이 한창이다. 비요른 CEO는 "지하 암반 본 굴착 공사는 작년 말 제출한 사전 승인 보고서가 통과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며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중·저준위 지식을 고준위 처리 시설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권 교체 등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재정 구조도 사업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스웨덴은 원전 운영사들이 발전량(와트) 비례 분담금을 '방폐물기금(Nuclear Waste Fund)'에 납부해 비용을 충당한다. 비요른 CEO는 "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독립 기구이기 때문에, 원전에 반대하는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SKB의 프로젝트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종 처분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빛을 발한 것은 '지자체 간 상생 협약'이었다. 스웨덴은 최종 단계에서 포스마크(외스트함마르 시)와 오스카르샴 두 지역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파비앤 죠베르그 외스트함마르 시장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떤 지역도 '패배자'로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처분장 유치에 따라 지급되는 약 20억 크로나(약 3175억 원)의 특별 지원금 중 무려 75%를 '선정되지 못한' 오스카르샴 지역에 배분했다. 유치 지역(25% 배분)은 처분장 건설에 따른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산업 유치 혜택을 누리는 만큼, 탈락 지역에 재정적 보상을 대거 양보해 타협을 이룬 것이다.
여기에 오스카르샴은 부지 유치엔 실패했으나 이미 운영 중인 중간저장시설(CLAB) 등을 통해 전체 방폐물 처리 시스템의 핵심 축을 계속 담당한다. 두 도시가 제로섬 게임을 벌인 것이 아니라 윈-윈(Win-Win)하는 거대 산업 파트너로 공존을 택한 셈이다.
지역 주민의 실질적 권한 강화도 주효했다. 스웨덴은 주민들이 제기한 불안 요소를 지자체가 취합해 토지환경법원에 제출하면 이것이 판결을 통해 강제력 있는 '법적 규제'가 된다.
죠베르그 시장은 "예를 들어 주민들이 '덤프트럭 소음과 안전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내면, 시가 이를 반영해 '1년에 특정 도로에는 트럭이 몇 대만 지나갈 수 있다'는 구체적인 규제 조건을 법원에 유도해 낸다"며 "자신의 목소리가 국가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통제 장치로 작동하는 것을 보며 주민들은 불안감을 해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은 스스로를 정부, 원전 사업자와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한다"며 "이렇다 보니 대도시의 외지인이나 국제 환경단체들이 와서 반대 시위를 하면,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우리 동네 살지도 않으면서 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불편해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핵무덤'이라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도 죠베르그 시장은 "오히려 우리 동네는 북유럽 방폐물의 메카로 불린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제 막 부지 선정의 첫걸음을 뗀 한국 사회에 대해 죠베르그 시장은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주민들의 마음을 열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자체장이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철저한 교육과 정보 공유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시장이나 고위 공무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매일 만나는 축구 코치, 동네 가게 사장님 같은 '골목길 오피니언 리더'들과 먼저 커넥션을 만들고 저녁을 먹으며 스킨십을 넓혀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자체장 스스로가 철저하게 팩트에 근거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주민 앞에 서야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