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교통정책이 노선 중심에서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전환된다. 사람이 시간표를 짜고 노선을 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주민 이동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운행 경로를 실시간으로 설계하는 새로운 교통체계가 농촌에서 첫 시험대에 오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와 데이터를 활용한 '농촌 특화 AI 기반 수요맞춤형 교통모델' 실증사업을 강원 인제군, 충북 진천군, 경북 봉화군, 경남 의령군, 경남 하동군 등 5개 지역에서 추진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콜버스(DRT)'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농촌 교통 운영방식을 AI 기반으로 근본적으로 바꾸는 첫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농식품부는 2018년부터 전국 82개 군에서 소형버스와 택시 등을 활용한 '농촌형 교통모델'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고정노선 방식은 이용객이 적은 시간에도 차량이 운행되는 반면, 주민이 필요할 때는 이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이 반복돼 왔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한 농촌에서는 이용 수요 자체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새 모델은 AI가 주민 이동패턴과 지역 특성을 분석해 버스와 택시, DRT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호출이 발생하면 최적 경로를 계산해 차량을 배차하는 방식이다.
실증 대상도 지역 특성에 따라 차별화했다.
강원 인제 상남면은 기존 마을버스를 AI 기반 체계로 전환하면서 생활물류 배송까지 연계한다. 충북 진천 백곡면은 간선버스와 환승거점, DRT를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경북 봉화 소천면은 산간지역 특성을 고려한 광역 연계형 DRT를 시험한다.
경남 의령 부림면은 공영버스와 택시형 DRT를 복지서비스와 연결하고, 하동 화개면은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관광 연계형 교통모델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단순한 이동수단 확대가 아니라 농촌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농촌은 의료·복지시설, 생활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새 시설을 짓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 대신 교통 접근성을 개선하면 기존 시설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농식품부는 오는 11월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며 스마트폰 앱은 물론 전화 호출도 병행해 고령층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성공하려면 AI 기술보다 현장 운영체계와 데이터 축적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농촌은 도시처럼 호출 데이터가 많지 않아 AI가 학습할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 또한 기존 운수업체와의 역할 조정, 지자체 재정 부담,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 마련도 넘어야 할 과제다.
특히 AI가 최적 경로를 제시하더라도 주민들이 익숙한 고정노선 이용 방식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을지도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출범시키는 '농촌 교통 정책 협의회' 역시 이러한 현장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협의회에는 농식품부와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실증사업 수행기관인 ㈜와이비에스, 현대자동차,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실증 대상 5개 군, 해당 광역 연구기관 및 교통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전한영 농식품부 농촌정책국장은 "이번 실증사업은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농촌 주민의 이동권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모델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며 "실증사업을 통해 지역별 특성에 맞는 표준모델을 마련하고, 의료·복지·생활서비스와 연계되는 지속가능한 농촌형 교통체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