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가 정부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에 "농어업 말살이자 식량주권 포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CPTPP 가입 추진을 핵심 과제로 제시한 것과 관련 사실상 가입 절차에 들어갔다고 보고 철회를 촉구한 것이다.
한국농축산연합회·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은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종덕 진보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는 지난 4일 산업통상부 업무보고에서 CPTPP 가입 추진을 10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발표하며 사실상 가입 방침을 굳혔다"며 "가입을 기정사실화한 채 밀실에서 정책을 결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업계는 CPTPP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시장 개방 수준이 높은 협정이라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우리나라는 CPTPP 회원국 대부분과 이미 FTA를 체결했지만, 기존 협상에서 제외하거나 개방 수준을 낮춘 민감 품목도 가입 협상 과정에서 다시 협상 대상이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일본과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보다 높은 수준의 농수산물 시장 개방 논의가 이뤄질 수 있고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의 추가 개방 요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단체는 "CPTPP의 농산물 관세 철폐율은 96%를 넘어 기존 FTA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며 "값싼 농축산물이 대거 유입되면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후발 가입국인 우리나라는 기존 회원국들로부터 더 광범위한 시장 개방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검역 주권 약화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들은 "CPTPP는 동식물 위생·검역(SPS) 기준을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구역 단위로 쪼개어 적용하도록 강제한다"며 "검역 주권이 약화되고 일본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요구 등도 거세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농어민단체는 기존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2017년 한·중 FTA 당시 약속한 1조원 규모 농어촌상생협력기금도 목표액의 30% 수준밖에 조성되지 못했다"며 "상생기금은 시장 개방을 정당화하기 위한 약속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FTA 확대 이후 농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 경지면적 축소, 곡물자급률 하락, 농가부채 증가 등 농업 기반이 지속적으로 약화됐다"며 "CPTPP 가입은 농어민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CPTPP 가입 추진 즉각 철회 △농어업계와의 실질적 협의 및 식량자급률 제고 대책 마련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 등 추가 시장 개방 정책 중단 등을 요구했다.
한편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CPTPP 가입 검토를 공식화했다.
김 장관은 아세안과 멕시코 등 신규 시장 확보와 K-콘텐츠·소비재 수출 확대를 추진 배경으로 들면서 농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적극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향후 가입 절차가 본격화하면 품목별 영향을 분석하고 농업 분야 보완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