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분쟁 사건이 늘면서 업무 부담이 커진 중앙노동위원회가 '즉결심판' 도입을 검토한다. 사건 처리 절차를 간소화해 적체를 해소하고 노사 당사자의 권리 구제를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중노위는 심판 사건을 보다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약식절차' 등을 참고한 제도 도입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노위가 신속 처리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늘어나는 노동분쟁 사건과 이에 따른 심판 업무 부담이 있다.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등 노동위원회가 다루는 사건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심리와 검토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게 중노위의 판단이다.
중노위는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을 별도의 절차로 처리할 경우 전체 심판 사건의 처리 기간을 줄이고, 복잡하거나 쟁점이 많은 사건에 심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위원회 판정을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분쟁 상태를 장기간 이어가야 하는 만큼 신속한 권리 구제 측면에서도 사건 처리 기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노동위원회 심판은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초심을 거친 뒤 당사자가 판정에 불복하면 중노위 재심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중노위 재심판정에도 불복할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중노위는 즉결심판을 도입할 경우 모든 사건을 일률적으로 간소화하기보다는 사건의 성격과 쟁점 등을 기준으로 신속 처리 대상을 선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대상 사건과 심리 방식, 당사자의 소명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등 세부적인 제도 설계는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약식으로 처리할 경우 사안에 대한 충분한 내용 검토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사건 처리의 신속성을 높이면서도 당사자의 권리 구제가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사건 적체 해소를 위해 '즉결심판' 등 신속 처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속도보다 판정의 신뢰성을 먼저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공익위원에게 심판이 집중되는 등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만으로는 분쟁을 끝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17일 노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노동위원회 심판은 해고·징계와 부당노동행위 등 근로자의 생계와 기업의 인사·노무관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쟁을 다룬다. 신속한 권리 구제가 중요하지만 사실관계와 법리 판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 절차까지 간소화할 경우 판정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노동위 심판은 사건에 따라 짧은 심문과 서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어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복잡한 노동분쟁일수록 양측의 주장과 증거를 면밀하게 따져야 하는 만큼 처리 속도에만 집중하면 심판의 충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위원 구성과 심판위원 배정의 공정성도 과제다. 최근 개정 노조법 관련 중노위 재심 사건에서는 특정 공익위원들에게 심판이 집중된 사실이 국회에서 지적되면서 공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 관련 중노위 재심 39건에 참여한 공익위원은 전체 31명 가운데 7명에 그쳤다. 박수근 중노위원장은 36건, 김유진 상임위원은 35건, 김은철 상임위원은 28건에 참여했다.
나 의원은 특정 위원들에게 심판이 집중된 점을 들어 공정성을 지적하며 무작위 배정 원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공정성에 관한 의심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며 무작위 배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중노위는 개정 노조법 시행 초기 원·하청 교섭 사건의 전문성과 판단의 일관성을 위해 상근 공익위원 중심으로 심리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외부 공익위원도 심판위원회 주심을 맡도록 운영 방식을 바꿨다고 밝혔다.
판정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처리 속도만 높일 경우 분쟁이 노동위에서 끝나지 않고 법원으로 넘어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노동위 판정에 불복하면 중노위 재심을 거쳐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법조계에서는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기에 앞서 심판위원 구성과 배정의 공정성,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과 법리 검토 등 기존 심판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판의 질에 대한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절차를 간소화할 경우 판정 불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원청 사용자성 등을 둘러싼 노동위원회 판단에 기업들의 불복이 잇따르고 있다. 초심과 재심에서 판단이 뒤집히는 사례도 나오면서 중노위에서 끝나지 않은 법적 쟁점이 법원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노란봉투법의 모호한 규정이 결국 기업들의 불복과 법원행을 더 늘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7월말 기준 노란봉투법 관련 중노위 사건은 70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사측도 신청할 수 있고 복수 노조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순한 노사 간 승패로 보기 어려운 '교섭단위 분리' 사건을 제외하면 판정이 끝난 31건 중 24건이 인정돼 인정률은 77.4%로 나타났다.
인정률은 노동위가 판정을 마친 사건에서 신청을 받아들인 비율로, 노란봉투법 관련 분쟁에 대한 노동위의 판단 경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1심인 지노위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판정이 끝난 사건의 인정률은 87.4%였다. 중노위 재심에서도 인정 결정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지노위의 인정 판정을 뒤집어 기각한 사례는 2건이었다.
반대로 지노위의 기각 판정을 뒤집어 중노위에서 인정한 사건도 나왔다. 중흥건설·중흥토건·한국도로교통공단·한국산업단지공단 등이 대표적이다. 초심과 재심에서 판단이 달라지는 사례가 나오면서 노동위 단계에서 사용자성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끝나지 않는 모습이다.
중노위 재심 결정에 대한 기업들의 불복도 이어지고 있다. 중노위에 따르면 8월14일 기준 서울행정법원에 제기된 행정소송은 5건으로, 이 가운데 기업이 원고인 사건은 4건이다. 한화오션과 중흥건설·중흥토건·포스코이앤씨 등은 자신들이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어서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할 의무가 없는데도 중노위가 이와 달리 판단했다며 재심 결정의 취소를 구했다.
윤재옥 의원은 "모호한 노란봉투법과 노동위의 편향적 판정이 기업들을 법정으로 내몰고 있다"며 "현장 혼란을 막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기준 마련과 노동위 판정 시스템의 즉각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법조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의 핵심 쟁점인 원청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노동위 판단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법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되면 단체교섭 의무가 발생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 향후 법원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해석지침에도 한계가 있다. 노동부의 해석지침은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있지만 법원을 구속하는 최종적인 법적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노란봉투법상 쟁의 대상과 관련해 행정적 해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의 지적을 내놓으며 구체적인 기준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노동부는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포함해 구체적인 제도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초기인 만큼 중노위 재심 결과에 불복해 법원으로 향하는 사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노동위의 판단과 법원의 최종적인 법리 확립 사이에 간극이 커질 경우 노사 현장의 법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