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미국은 콩 한 알로 에너지·수출전략 짜는데…한국 농정은 왜 '수급'에 갇혔나

세종=정혁수 기자
2026.09.21 06:00

-美 대두, 생산 넘어 바이오연료·사료·금융·통상까지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움직여
-韓 쌀 줄이고 논콩 늘렸지만 생산 증가가 수요 앞서…정부 다시 재배면적 관리 나서
-K-푸드 수출 확대와 별개 곡물은 '얼마나 심을까' 넘어 '누가 계속 살 것인가' 전략 필요

[편집자주]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본사를 둔 대형 대두 가공·바이오연료 업체 애그 프로세싱(AGP)

미국에서 콩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다.

대두유는 식품과 바이오연료가 되고, 대두박은 축산사료가 된다. 대두가격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시장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농민이 낸 자금은 다시 품종개발과 시장개척에 투자된다.

중국의 구매량과 브라질의 작황, 미국의 에너지정책과 미·중 통상관계까지 맞물리면서 콩 한 알이 농업·에너지·금융·통상을 잇는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미국 현지조사는 이 같은 미국 대두산업의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KREI는 지난 8월 미국 미주리와 시카고에서 대두농가를 비롯해 농식품정책연구소(FAPRI), 미주리대두협회, 바이오디젤 공장, Bayer, 미국대두협회(ASA), 미국대두수출위원회(USSEC) 등을 찾아 대두 생산·가공·수출과 바이오연료 산업을 조사했다.

출장 목적도 국제 대두 수급과 가격 변동이 국내 식품·사료·가공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한국의 대두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찾는 데 맞춰졌다.

미국 미주리주 북서부의 한 농민이 콤바인으로 대두를 수확하고 있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농업과 에너지정책의 결합이다.

미국에서는 바이오디젤과 재생디젤용 대두유 수요가 늘면서 대두 압착시설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KREI 조사에서도 최근 미국 대두 압착능력이 크게 확대되는 흐름이 확인됐다. 압착수익에서 대두유가 차지하는 가치 비중도 과거보다 높아졌다.

콩을 더 많이 짜면 대두유뿐 아니라 대두박도 함께 늘어난다. 대두 압착물 가운데 약 80%가 대두박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정책이 대두유 수요를 만들고, 그 결과 늘어난 대두박이 세계 사료시장으로 흘러가면서 한국의 축산·사료 원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대두농가의 시장 대응 방식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 대두농가들은 콩을 판매할 때 판매가격의 0.5%를 '대두 생산자 의무자조금(Soybean Checkoff)'으로 부담한다. 이렇게 조성된 재원은 품종개량과 병해충·토양 연구뿐 아니라 바이오디젤 수요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 등에 다시 투자된다.

현지 '대두 혁신농장(Farm for Soy Innovation)' 역시 연구를 시험포에서 끝내지 않는다. 연구→현장검증→농가 시연→농가 확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

생산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그 콩을 누가, 어디에서, 어떤 용도로 사게 할 것인지까지 고민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국산 두류 신수요 창출과 소비 다양화를 위한' 러쉬(LUSH)코리아 상생협약을 진행한 가운데 29일 서울 서초구 러쉬 강남역 매장에서 송미령 장관과 우미령 대표가 국산 두류를 활용한 제품 설명을 들으며 시연을 하고 있다. 이날 업무협약은 농림축산식품부, 화장품 브랜드 러쉬가 국산 콩 신수요 창출 및 소비 다양화를 위한 상생 협력을 추진 하는 자리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이사 등이 관계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행사는 환영사, 축사, 협약 체결 및 기념촬영, 국산 제품 시연 등으로 진행됐다. 농식품부는 국산 두류 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부터 제품화패키지지원사업을 통해 국산 두류를 활용한 제품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러쉬는 국산콩 제품화 패키지 사업 관련 제품을 판매중이다. /사진=임한별(머니S)

한국 농정(農政)과의 차이도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쌀 수급균형을 위해 벼 재배면적을 약 64만ha로 관리하고 전략작물 목표면적을 약 9만ha로 정했다. 두류도 3만2000ha의 목표면적을 설정했다.

정부가 품목별 생산량과 재배면적을 사전에 조절하는 '선제적 수급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산조정만으로 시장을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2023년부터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논콩 재배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농식품부 스스로 "수요 확대 대비 생산 증가 폭이 커지면서 정부 비축재고가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콩 재배를 장려한 뒤 다시 적정 재배면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물론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최근 식량산업 정책에서 신수요 창출과 대량소비처 확대를 통해 '수요가 생산을 견인하는 산업구조'를 만들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국산콩 가공제품 확대와 식품기업 연계, 새로운 소비처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문제는 생산 확대와 수요 창출의 속도가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콩 생산은 정책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늘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받아낼 시장은 그만큼 커지지 못했다. '쌀을 얼마나 덜 심고 콩을 얼마나 더 심을 것인가'와 함께 '늘어난 콩을 누가 계속 사게 할 것인가'를 처음부터 함께 설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두부와 장류만으로 충분한지, 국산콩을 활용한 식물성 단백질과 간편식 시장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식품기업과 장기계약재배를 어떻게 확대할지, 수입콩과의 가격차를 품질·기능성·스토리로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지도 생산정책과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농식품부가 글로벌 시장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 '글로벌 NEXT K-푸드 프로젝트'를 통해 권역별 전략품목을 육성하고 있고, K-푸드+ 수출 160억달러를 목표로 해외 유통망과 신흥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완제품인 K-푸드의 수출전략과 식량·사료 원료를 다루는 글로벌 공급망 전략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의 식품과 축산산업은 대두와 대두박 등 주요 원료를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의 바이오연료 정책이 바뀌고, 브라질 작황이 흔들리고, 중국이 대두 구매량을 조정하거나 해상운임과 환율이 급등하면 국내 기업과 농가의 비용도 영향을 받는다.

KREI 조사에서도 세계 대두시장은 이미 '미국 독주'가 아니다. 2024/25년 기준 세계 대두 수출에서 브라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이 그 뒤를 잇는다. 중국은 세계 대두 수입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최대 구매국이다.

생산국인 미국과 브라질,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한국의 식품·사료시장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한국의 곡물정책도 국내 재배면적만 들여다봐서는 부족하다.

미국·브라질의 생산량과 중국의 구매동향, 바이오연료 정책,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가격, 환율·운임, 비유전자변형(Non-GM) 대두의 계약재배와 분리유통 비용까지 하나의 공급망으로 보고 식품·사료·축산업에 미칠 영향을 상시 분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은 콩 한 알을 놓고 생산·가공·에너지·금융·수출시장을 함께 본다.

한국 농정 역시 '수급이 흔들릴 때마다 재배면적을 늘렸다 줄이는' 대응을 넘어 생산과 산업수요, 해외 공급망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을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올해 콩을 몇 ha 더 심느냐가 아니다. 5년 뒤, 10년 뒤에도 그 콩을 사겠다는 사람이 '어디에(where)'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곡물정책도 이제 이 질문에서 다시 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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