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봐라, 이게 진짜 바이브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웰메이드 첩보 스릴러 영화 ‘헌트’가 올여름 극장가를 견인하는 가운데, 1980년대를 그린 또 한 편의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찾아온다. 오는 2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감독 문현성)은 1988년 9월 열린 서울올림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끈한 액션 오락 영화다. 영화가 다루는 장르 종목도 다양해 청춘, 범죄, 코미디, 카 체이싱, 음악, 정치 사회 풍자 등 즐길 거리가 수두룩하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서울, 상계동에 아지트를 둔 다섯 명의 젊은이가 오랜만에 다시 뭉친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갖가지 범법을 저지른 이들의 약점을 쥔 검사가 찾아와 극비리에 진행 중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의 미션은 사채시장의 큰손이자 전 정권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대통령 2인자의 새로운 운반책이 되어 정보를 빼내는 것.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살던 다섯 명의 상계동 크루는 ‘비자금 전격 유통작전’에 참여하면서 나라의 현실에 눈을 뜬다.
영화 ‘서울대작전’의 매력은 시대와 자동차 액션을 주연료 삼아 개성 있는 스키드마크를 새긴다는 점이다. 1988년과 서울올림픽을 배경으로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을 꼽자면 2015년 연말에 추억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시리즈 ‘응답하라1998’(tvN)이다. 이 드라마는 한 동네에 이웃한 평범한 열여덟 살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 가족 이야기를 소박한 재미와 감동으로 그려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에 ‘서울대작전’은 자동차에 열광하는 20대 청춘들을 내세워 개성을 키우고 굵직한 정치적 소재를 가공해 유쾌하고 스릴 넘치는 액션 코미디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줄거리를 통해 어느 정도는 짐작했겠지만, ‘서울대작전’에서 다룬 역사적 사건은 전두환 비자금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전 장군으로 묘사하며 인물의 일부 모습만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노골적인 대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실제 모델을 짐작하게 한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강 회장’ 강인숙(문소리)과 보안사 소령 출신 이현균(김성균) 2인조는 1980년대 최대 금융사기사건으로 꼽히는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희화화된 실존 인물들이 오락영화의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로 기능하면서 한국 영화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정치 풍자의 재미를 되살린다.
1980년대와 카체이싱 액션의 만남은 ‘서울대작전’의 엔진 역할을 한다. 한국 영화에서 카체이싱 액션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주로 시도해왔다. 영화 ‘헌트’에서도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서울대작전’은 국산 올드 카를 부각해 차별화를 선언한다. 콩코드, 그랜저, 포니 등 1980년대를 누빈 클래식카들의 등장은 BMW M5, 포르쉐 등 유명 외제 차들보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산 차들을 경주용으로 개조하는 장면이나 88올림픽 콘셉트로 튜닝한 경주차는 자동차 영화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충무로에서 남산까지 달리는 운전 테스트, 올림픽 개막식날 서울 도심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전 등 복고풍 자동차 액션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80년대 대중문화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작전도 성공적이다. 상계동 크루를 찾아온 안 검사(오정세)는 드라마 ‘전격Z작전’를 언급한다. 전직 형사가 당시엔 상상에 불과했던 인공 지능 자동차 ‘제트카’를 타고 범죄를 해결하는 자동차 액션드라마로 1980년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안 검사가 인용한 ‘전격 Z작전’의 명대사 “One man can make a difference.(한 사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서울대작전’의 메시지와 상통한다. 또 강 회장의 운전 테스트가 시작되는 장소로 대한극장이 등장해 ‘로보캅’ ‘탑건’ ‘라밤바’ 등 추억의 외화 제목을 자연스레 소환하고, 상계동 크루 멤버의 이름을 당시 히트작 ‘영웅본색’을 연출한 오우삼 감독과 동명으로 설정해 영화 팬들에게 추억 돋는 웃음을 안긴다.
‘서울대작전’에서 바이브를 담당하는 음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음악 영화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980년대 대중가요와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극 중에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믹스테이프가 상황별 맞춤형으로 제공되는데 1988년 여름 강변가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이상은의 ‘담다디’를 비롯해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1980년대를 주름 잡았던 3인조 남성 댄스그룹 소방차의 히트곡 ‘어젯밤 이야기’, 1980년대 최고의 록그룹 송골매의 대표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 88올림픽 주제가를 부른 코리아나의 ‘The Victory’가 메들리처럼 이어지며 극의 텐션을 고조시킨다. 이쯤 되면 한국판 ‘베이비 드라이버’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나름 스타일 있고 재밌는 친구들이네.” 상계동 크루를 본 강 회장의 대사는 ‘서울대작전’ 캐릭터에 그대로 적용된다. 상계동 크루의 리더이자 막강한 운전 실력의 소유자 동욱(유아인)이 영화의 핸들 역할을 하고, 신학과 출신으로 클럽 DJ를 하는 독특한 이력의 우삼(고경표)이 동욱과 선의의 경쟁 구도를 이룬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믿음직한 맏형(이규형)과 엔지니어를 담당하는 막내 준기(옹성우), 오토바이를 즐기는 동욱의 동생 윤희(박주현)까지 개성과 역할이 확실한 캐릭터 조합 덕분에 캐릭터 무비의 재미까지 안긴다.
신세대와 기성세대로 나뉜 배우들의 연기 대결도 흥미진진하다. 유아인, 고경표, 이규형, 옹성우 등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와 문소리, 김성균, 오정세 등 중견 배우들의 내공이 합쳐져 시대의 달뜬 분위기에 휩싸인 인물들이 다이내믹하게 그려졌다. 영화에 잠깐씩 얼굴을 비춘 정웅인, 윤경호, 이세영 등 카메오 배우들도 인상적이다. 뮤지션 출신 두 배우의 출연도 주목할 만하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특이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해온 백현진은 이번 영화에서 전 장군 역을 맡아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배우 특유의 자유분방한 대사톤으로 개성을 자아낸다. ‘서울대작전’ OST에 참여하기도 한 송민호는 주인공 동욱에게 열등감을 갖고 대립하는 동네 친구 갈치 역을 맡아 엉뚱하고 코믹한 캐릭터 연기로 연기 데뷔식을 치른다.
‘서울대작전’은 “엑셀 한 번 밟으면 끝까지 갑니다”를 눈으로 보여주듯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하고 빠른 리듬으로 주행한다.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기본 옵션으로 장착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신파의 함정에 브레이크 걸리지도 않고, 시대상을 얄팍하게 가져와 겉만 번지르르하게 기름칠 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서울대작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전형적인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공식을 따른다. 이 정공법에 가까운 운전법이 뉴트로한 감성을 일으키면서 완주에 성공한다. 서울올림픽을 겪은 기성세대에겐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뉴트로에 열광하는 MZ세대에겐 새롭게 즐길 콘텐츠가 추가된 셈이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88올림픽 슬로건처럼 K드라마에 열광하는 해외 시청자들이 1988년의 서울 바이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몹시 궁금하다. 재기 발랄한 기획과 작전으로 한국 오락 영화를 업그레이드한 ‘서울대작전’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찍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