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선언 아닌 시스템…도봉구가 만든 탄소감축 작동 방식
조례 명문화, 주기적 점검·평가로 지속가능한 정책 체계 구축
청사 벽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설치
'탄소감축 행동→지역화폐 보상' 앱으로 주민 참여도↑
역내 태양광 발전소 수익으로 정책 재원 마련

서울 도봉구 청사 남측면 외벽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은은하게 색이 변한다.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다. 외벽을 덮고 있는 특별한 '자재' 덕분이다.
이 자재는 지난 2022년 기존 석재 외장을 걷어내고 부착한 891장의 태양광 모듈이다. 설치 면적은 751㎡로 국내 최대 규모의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사례다. 이 '벽'은 100.3kW(킬로와트)의 발전용량을 갖춘 발전소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을 부지가 부족한 도시에서 건물 자체를 발전소로 바꾼 상징적 실험은 도봉구가 지난 6년 여간 추진해 온 탄소중립 정책의 결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도봉구는 서울 25개 구 중 기후변화 대응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초지자체 중 하나로 꼽힌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6년까지 2018년 대비 20.4%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2023년 기준 이미 18% 감축을 달성했다.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았다. 글로벌 기후평가 기관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서 국내 지자체 중 유일하게 2021년과 2022년 연속 최고 등급(A)을 받았고, 글로벌 기후·에너지시장협약(GCoM)에서도 국내 지자체 중 유일하게 4년 연속 평가 기준을 달성해 최고 등급(컴플라이언트)을 획득했다.
이 같은 검증된 역량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달 27일 도봉구청에서 이종형 도봉구 기후환경과장을 만나 들은 요인은 정책 연속성, 주민 체감형 정책, 지속가능한 재원으로 요약됐다.

도봉구의 차별점 첫 번째는 정책의 명문화와 연속성이다. 탄소중립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제도화했다. 2020년 12월 도봉구는 기후변화 대응 조례에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명문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에는 전국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도봉구 탄소중립 기본 조례'도 제정했다. 2020년부터 이 업무를 담당해 온 이종형 과장은 "명문화해 탄소중립을 객관적인 약속으로 만든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책도 단계적으로 고도화했다. 2020년 8월 구청 탄소중립 전담팀이 건물·수송·에너지·교육 등 7개 분야로 나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전략을 만들었는데, 이런 종합 전략 역시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이었다. 정책은 2022년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2023년 에너지 종합계획, 지난해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으로 정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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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분기별 이행 점검과 결과 공개까지 더해졌다. 이 과장은 이를 '약속–계획–이행–보고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체계는 민선 7기에서 8기로 행정 수장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유지되며 정책의 지속성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는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설계다. 도시에서 탄소중립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탄소배출원이 발전소나 산업단지처럼 밀집돼 있지 않고 건물·난방·교통 등으로 잘게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 저감을 위해서는 시민의 일상 속 행동이 모여야 한다. 그러면서 기후변화 대응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방식만으로는 행동을 바꾸는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봉구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대표적인 정책이 2023년부터 시작한 '탄소공감 마일리지'다. 걷기, 계단 이용, 재활용 물품 구입, 다회용기 이용, LED조명 교체, 에너지 절약 등에서부터 전기차·수소차 구매 등의 '실천'을 하면 포인트를 지급하고 이를 도봉구 지역화폐로 바꿔준다. 도봉구민, 도봉구에서 학교·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앱을 통해 가입해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다.
온실가스 저감이 가능한 행동을 '보상'으로 연결하며 이 정책은 주민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기준 도봉구민과 도봉구 생활권자 1만여 명이 참여 중이며 누적 참여 건수는 450만 건을 넘어섰다. 감축한 온실가스만 약 7500톤(CO2eq)이다. 이 과장은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얻고 그게 다시 지역경제로 환원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교육과 실천을 결합하기 위한 정책들도 호응을 얻고 있다. '도봉구 제로씨(Zero-C)'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탄소중립 실천을 전파하는 주민을 도봉구 제로씨로 지칭한다. 현재 교육을 통해 6200여 명이 배출됐고, 2050년 3만 명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도봉 녹색구매지원센터'도 열었다. 정부가 인증하는 녹색제품 200여 종을 전시해 주민들이 환경에 기여하는 방식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전국에서 기초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유일한 녹색제품 전시관이다.

세 번째는 독립적인 재원이다. 도봉구는 역내 공원, 주차장 등에 설치한 공공 태양광 발전으로 얻은 수익을 '기후대응기금'으로 적립해 정책에 재투자한다.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다시 탄소중립 정책을 운영하는 구조다.
이 기금은 탄소공감 마일리지 보상과 취약계층 전기요금 지원 등에 활용된다. 예산 부족이 지자체 정책 중단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과 달리 도봉구는 자체적인 '순환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이 과장은 "기금이 100% 자체 재원이라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봉구의 사례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기 어려우면서 전력소비가 많은 도시에선 탄소배출 저감을 실현하기 위해 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폭염 등 기후변화 여파가 더 커지면서 정책의 효과는 감축을 넘어 '적응' 영역에서 더 확대될 전망이다. 이 과장은 "기후위기가 온열질환이나 한랭질환 같은 일상의 위험까지 포함하는 기후 재난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필요한 대상에 맞춤형 지원을 하는 방향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