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강기영은 특유의 유쾌함을 앞세운 모습으로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지난해 열풍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에게 단단히 눈도장을 찍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역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익숙한 강기영의 모습은 자연스럽다는 장점도 있지만 많은 캐릭터가 겹친다는 단점도 명확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강기영은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낯설 것 같다는 생각은 선입견이었다. OCN 토일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에서 악역 황필광을 맡은 강기영은 앞선 연기가 떠오르지 않는 모습으로 배우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경소문2'는 새로운 능력과 신입 멤버 영입으로 더 강해진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더 악해진 지상의 악귀들을 물리치는 통쾌하고 땀내 나는 악귀 타파 히어로물이다. 강기영은 최악의 힘으로 최상의 포식자를 꿈꾸는 악귀 황필광 역을 맡았다. 작품 종영을 앞두고 만난 강기영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소감과 함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강기영을 보면 유쾌하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다양한 배역뿐만 아니라 예능에서 보여준 강기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 반대의 황필광이라는 캐릭터는 걱정이 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너무나 갈망하던 빌런이긴 했지만 걱정도 됐어요. 인정을 안해주실 것 같았고 너무 큰 변화가 독처럼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피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어요. 옆에 진선규 형과 김히어라 씨가 받쳐주니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도 '재미난 연기를 많이 봤지만 거기서 보여준 센스는 다른 역할을 해도 돋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결정하게 됐어요. 필광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 것 같아요. 게임으로 치면 아이템을 줍는 것처럼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무기가 늘어난 느낌이에요. 그 평가가 혹독하고 냉혹하더라도 조금은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토록 원했으면서도 걱정이 많았던 필광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강기영은 외적인 부분에서 큰 변화를 선택했다. 원작의 필광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강기영은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물론 10kg을 감량하며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금방 할 줄 알았어요. 제가 체지방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이스 하키를 해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촬영 일정이 바뀌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 시기도 길어졌어요.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살면서 이렇게 체지방을 걷어낸 적이 언제인가 싶더라고요. 사실 초반에는 조금 오동통한데 관리를 더 하게 되면서 더 비릿하게 보여진 장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촬영 일정의 변경으로 몸을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스스로도 예민해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 끝에 스스로도 뿌듯한 결과물이 완성됐다.
"4개월 동안 닭가슴살만 먹어야 한다는 악에 받침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맛있는 걸 먹는 게 나쁜 행동을 하는 건 아닌데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어요. 예민해지다 보니 눈치를 보는 측근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눈치라도 봐주니까 고마웠어요. 나중에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느꼈어요. 쌀밥이 맛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가공육이 맛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스스로도 만족한 노력의 결과물은 필광의 등장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겔리 역을 맡은 김히어라와 보여준 케미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섹시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더티 섹시를 목표로 갔는데 더티로만 안 가서 다행이네요. 김히어라 씨는 식단을 같이하는 전우였어요. 같이 고생하는 사람이 있어서 위안이 됐죠. 첫 등장이 강렬해야 했는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어요. 대본에는 '한 쌍의 뱀이 또아리를 트는 것처럼'이라고 적혀있었어요. 히어라 씨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걸 보고 저도 저렇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기영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지며 '사람 자체가 유쾌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는 필광을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필광은 마주석(진선규)과 달리 특별한 전사도 없어 감정을 몰입하기 더욱 어려운 캐릭터였다.
"계속 장난쳐야 하는데 필광은 도저히 장난으로 할 수 없는 캐릭터잖아요. 사실 캐스팅 전에는 주석의 스토리가 더 입체감이 있어서 마주석도 매력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이 워낙 확실하게 필광을 어필해 주셨어요. 전후의 이야기는 안보일 수 있지만 오롯이 악으로만 봤을 때 살려주겠다고 말씀하셔서 확신을 얻었어요. 저도 전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으로 대비를 주는 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필광은 악으로만 가도 허전하지는 않았어요."
필광이라는 캐릭터가 몰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초능력을 다루는 드라마의 특성상 필광은 염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동시에 염력을 쓰는 캐릭터들과 싸워야 한다. 강기영은 "목을 잡힌 연기가 가장 어려웠다"며 촬영 현장을 돌아봤다.
"목을 안 잡혔는데 목을 잡힌 연기가 어려웠어요. 스스로 호흡을 참아야하니까 가끔은 누가 잡아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었어요. 혼자서 하려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핑 돌 때도 있었어요. 진선규 형이 저를 잡아주기도 하고 제가 형을 잡아주기도 했어요. 극 안에서는 악에 받혀 싸우지만, 카메라 밖에서는 서로 살기 위해 지탱해 줬어요."
강렬한 인상을 보여줬던 필광은 마주석의 육체와 정신을 차지하지만, 결국 소문(조병규)에게 소환당한다. 강기영은 필광의 최후에 대해 "정말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실 다음 시즌을 욕심 냈다면 안 죽어야 하는데 마지막에는 (너무 힘들어서) 제발 좀 죽여달라고 했어요. 장렬히 전사를 해서 진짜 좋았어요. 빌런으로 1부부터 12부까지 끌고 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이왕 한김에 그저 그렇게 끝나고 싶진 않았어요. 마주석의 속까지 침투해 물고늘어지는 모습이 감사했어요."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조연을 거쳐 주연까지, 강기영은 배우로서 착실히 단계를 밟아왔다. 동시에 '미추리', 'RUN!' 등 다양한 예능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어느 순간 작품 속 배우 강기영와 인간 강기영의 모습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강기영이 빌런을 결심한 것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유쾌하고 재미난 역할을 하다 보니 제 안에서 아이디어의 고갈이 많이 오더라고요. 이 작품과 저 작품에서의 제스처가 비슷하고 '저건 연기가 아니라 강기영인데'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그런 것 때문에 빨리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과일이 많이 있는데 딸기 하나만 먹는 느낌이랄까요."
이러한 고민에서 선택한 황필광은 강기영이라는 인간과 배우를 구분하게 해주는 하나의 아이템이 됐다. 단순히 배역뿐만이 아니다. 극의 활기를 불어넣는 조연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되며 여유를 가지고 연기하는 법 역시 일깨워 줬다.
"초반에는 절대악으로서의 여유가 있었어야 했는데 좀 급했어요. 조연이나 재미있는 역할은 템포와 순발력 싸움이라 여유를 가지지 못했거든요. 제가 여유 있게 해도 되나 싶었거든요. 감독님도 템포를 중요시했는데 필광은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중반 이후로는 여유를 가지면서 촬영했어요."
다만, 강기영은 이러한 여유가 오만의 길로 가지 않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있다. 현재 차기작 '끝내주는 해결사'를 촬영 중인 강기영은 황필광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운 여유를 배역에 녹여내며 또 하나의 새로운 아이템을 획득하고 있다. 이렇게 차곡차곡 아이템을 쌓아가는 강기영은 또 다른 배역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지금 촬영 중인 '끝내주는 해결사' 역시 처음에는 여유가 부족했어요. 빌런 만큼이나 긴 호흡의 로맨스도 많이 해보지 않았거든요. 애정이 없어 보이는 수준이었어요. 이런 여유가 오만의 길로 가지 않고 겸손의 길로 가서 저를 계속 채찍질했으면 좋겠어요. 여유가 생겼다고 까불면 크게 돌아오더라고요. 붕뜨고 내려가는 걸 많이 봐서 중심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대표적인 사례가 저고요. 연기할 때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봤는데 감정신이 그런 것 같아요. 감정을 굉장히 깊이 있게 가지고 갈 수 있는 작품을 해본 적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두렵기도 한데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거기는 어떤 영역인지 궁금하고 제가 어디까지 몰입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