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부드럽지만 절대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연출/각본 황동혁)에서 현주(박성훈)는 바로 그런 존재다. 평상시에는 어여쁘다고 느껴질 만큼 다소곳하다가, 위기가 들이닥치면 쌍코피가 터지도록 상대의 뺨을 가차 없이 내리치고 적의 머리와 심장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을 쏜다.
현주는 평범한 상황에서 불편을 겪고, 주변이 아수라장이 돼야 평범을 찾는다.
현주가 평범한 때에 평범할 수 없는 건 그가 트렌스젠더 여성이어서다. 그가 ‘오징어 게임2’ 데스 게임에 뛰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돈이 없어 절반만 여성이 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현주는 성확정 수술을 마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는 이 데스 게임으로 돈을 벌면 태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마치고 그곳에서 살 요량이다.
하지만 마치 사회의 축소판 같은 이 죽음의 게임장에서, 그는 이로 인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존재다. 남자들은 대놓고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불쾌함을 담고, 여자들의 시선엔 신기함이 실려있다. 대놓고 멸시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피하며 그와 편을 들려고 하지 않는다. 평범한 상황이 걷히고 위기가 찾아오고 나서야 사람들은 현주를 바르게 바라본다. 봉긋한 가슴 뒤로 가려진 현주의 진면목은 사실 특전사 출신에 몸 꽤나 썼던 과거가 존재한다.
“저는 믿어요.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걸.” 현주가 게임 참가자들에게 건네는 이 말은 그를 오롯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희망을 피워낸다. 현주에게 가장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이 지냈던 영미가 나지막이 건넨 “언니 예뻐요”라는 말은, ‘오징어 게임2’ 전편을 다 보고 나면 시청자의 입에서도 나오게 될 말이다. 현주는 예쁘다. 그 마음과 행동이 넘치도록 예쁘다. 그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는 외면이고 배신이다. 뜨겁게 주변을 보살핀다. 영미의 죽음에 슬피 울던 그의 애처롭던 눈빛은 반할 수밖에 없는 이타심을 격렬하게 껴안았다.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를 연기한 박성훈에게 그 마음이 향한다. 현주와 완벽하게 체화된 박성훈마저 예뻐 보인다. 박성훈은 현주를 통해 강렬하게 감정적 공감을 끌어낸다. 톤까지 달리한 섬세한 그의 연기는 결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영역을 매력적인 환대의 영역으로 탈바꿈한다. 마냥 다소곳하다가 위기의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터프한 모습은 때때로 반전의 웃음을 준다.
‘오징어 게임2’에서 박성훈은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쌓아온 내공을 바탕으로, 강력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더 글로리’(2022) 전재준 이후로 ‘눈물의 여왕’(2024) 윤은성, ‘선산’(2024)의 양재석까지 잔상 짙은 ‘악역사’를 써오고 있던 박성훈은‘오징어 게임2’ 현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박성훈의 ‘악역사’만큼이나 이제 ‘선역사’도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