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이 한 사람의 삶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보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 오래된 결심 하나쯤은 숨어 있는 것만 같다. 곧고 단정한 눈썹 아래 유리알 같은 눈빛, 남을 해치지 않을 것 같은 미소, 그리고 그 너머에서 때때로 비치는 결연함. 오랫동안 바르고 선한 이미지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이 배우는, JTBC ‘굿보이’로 그 얼굴에 다른 서사를 덧씌운다. 선함에서 번뜩이는 분노로, 묵묵함에서 날뛰는 격정으로.
박보검이 ‘굿보이’에서 연기하는 인물의 이름은 윤동주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을 남긴 그 윤동주와 같은 이름이다. 그의 이름이 윤동주인 까닭도 “부끄러움 없이 살라”는 그것에서 왔다. 극에서 어머니가 생의 끝자락에 남긴 유언은 단순했다. “이름처럼 살아라.” 이름이 곧 윤리이고 좌표인 인물. 그의 퍼스널리티는 부끄러움 없이 살겠다는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윤동주는 과거 복싱 금메달리스트였지만 도핑 루머와 펀치드렁크, 그리고 삶의 비극에 휩싸여 경찰이 된 인물이다. 타고난 맷집과 주먹으로 인생을 살아왔고, 지나치게 날 선 정의감으로 이성을 거스르기도 한다. 피 묻은 맨주먹과 함께 질주하는 이 인물은 박보검이 그간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박보검이라는 배우에게 다시금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박보검은 착한 얼굴을 하고 있던 배우였다. 순하고 온화하며, 다정함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그런 얼굴이 분노할 때, 그 모습은 어떤 쾌감과 진심으로 다가온다. ‘굿보이’ 속 윤동주의 격투 장면은 기술적으로 정교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왜 싸우는가다. 박보검은 그 이유를 얼굴에 새긴다. 솔직함, 분노, 정의, 그리고 지켜야 할 사람들.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는 주먹과 표정, 그 속에 윤동주의 서사가 녹아 있다.
윤동주가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두르고 때로는 충동적으로 사건을 악화시키는 순간에도 시청자는 그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이 도리어 그의 순도를 증명하는 방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신뢰는 단지 극 중 설정이나 대사에 기댄 것이 아니라, 박보검이라는 배우가 쌓아온 얼굴의 신뢰 덕분이다. 그가 만든 모든 다정함은 이 윤동주의 급진적인 행동을 이해하게 만드는 자산이다.
박보검의 얼굴은 언제나 상냥하고 따뜻한 세계를 약속해 왔다. 그러나 '굿보이'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그 반대편이다. 예컨대 4회에서 빌런 민주영(오정세)의 차로 대책 없이 낙하할 때의 다소 자기 파괴적인 정의 실현. 이런 장면들은 전작에서 보여준 박보검의 다정함을 반사판 삼아 더욱 선명해진다. 이 다정한 충동으로 얼굴을 붉힐 때도 그것은 무너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낭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분노하거나 공격할 때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과 달리, 맞고 부서지고 짓밟힐 때는 감정을 과잉하지 않는다. 비명이나 눈물보다 버티는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이 절제된 방식은 윤동주의 고통을 더 내밀하게 만들어 또 다른 감정의 서사로 기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박보검은 이번 역할에서 대중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흔들되 그것을 부수지는 않는다. 낯설게 시작해, 결국 더 깊이 파고드는 순도의 감정. 그 역설적인 작동이 '굿보이'의 박보검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박보검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은 그가 가진 착한 얼굴이라는 자산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의 첫 방을 본 데 대한 놀라움과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