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이야기'가 해피엔딩이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

권구현(칼럼니스트) 기자
2025.11.14 09:59

둘리 세대 김낙수 부장, MZ 세대의 고길동이 되기까지

사진제공=SLL, 드라마 하우스, 바로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에 등장하는 고길동은 분명 고약한 심술쟁이 아저씨였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중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둘리 세대들은 사실 그가 능력있고 책임감 넘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느낀다. 고길동은 대한민국의 산업화 속에 버티는 게 가장의 미덕인 시대를 살았다. 그만큼 고길동의 어깨는 늘 무거웠으며, 몸은 고단했고, 마음엔 짜증에 차 있었다.

그럼에도 고길동은 아내와 두 자녀를 지탱하고 있는 가정의 기둥 역할을 능히 해냈다. 그뿐일까? 여동생의 아들 ‘희동이’까지 맡아 키웠다. 더불어 사고뭉치인 둘리, 도우너, 또치까지 반려동물로 길렀다. 번듯하게 회사에 나가고,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대 부의 상징인 자동차까지 소유한 능력자였다.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아빠 ‘노하라 히로시’ 역시 슈퍼 가장이다. 전 세계에서 주거비용이 가장 비싼 비싼 도쿄 한복판에 주차장 딸린 2층집을 갖추고, 아내와 함께 두 자녀와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고길동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웠다. 히로시는 경제가 안정되고, 가장의 의미가 새로이 정의된 시대를 살았다. 고길동이 가족을 위해 살아온 인물이라면, 히로시는 가족 덕분에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럼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김낙수 부장은 어떠할까? 고길동과 히로시가 그들의 능력을 현 시점에 재평가 받았다면, 김 부장은 작품 제목에서부터 능력자라는 것을 도장 찍고 들어간다. ‘둘리 세대’인 그는 고길동보다 많은 자산을 갖고 있고, 히로시보다 세련된 생활을 영유한다. 그런데 김 부장의 말투엔 언제나 불안이 묻어있다. 몸은 서울 자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마음은 월세 단칸방에 놓여 있는 모양새다.

사진제공=SLL, 드라마하우스, 바로엔터테인먼트

김 부장은 열심히 살았다. 성공한 사회적 지위가 그걸 방증한다. 하지만 잘 살아온 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성공은 살아온 삶을 대변하는 점수와 같았다. 하여 그보다 낮은 사람을 무시하는 걸로 자신의 위치를 과시했다. 학력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가진 재산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직업으로 귀천을 따지며, 자신이 우월할 땐 갑질도 행한다. 분명 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평생 회사 일을 열심히 해왔다는 높은 자존감에 삶이 함몰된다.

누가 뭐래도 김 부장은 꼰대다.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본인이 구세대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한다. 과거의 규칙으로 미래를 재단하고, 경험을 설파하며 권위를 챙긴다. 충고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부하들을 통제하기에, 열심히 일한 자부심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닌 부담스러운 유산이 됐다. 깨어있는 리더로 인정 받고 싶지만, 이미 일거수일투족에 꼰대의 냄새가 묻어난다.

하여 김 부장은 늘 인정에 목마르다. 20년 전 성공 방식이 지금에 통할 리 없다. 위기 상황은 허세로 포장하고, 해결 방안은 무리수에 가깝다. 속도 변화에 가장 민감한 인터넷 통신망 대기업의 부장이건만, 자신은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다. 인생의 전부였던 회사에서 채우지 못한 인정 욕구를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갈구한다. 그렇게 김 부장은 점점 외톨이가 된다.

그래서 김 부장은 추락한다. 최선을 다했고, 성과도 냈지만, 지방 공장으로 좌천당한다. 인생의 전부였던 회사가 자신을 외면한다. 본인은 억울할 수 있겠으나, 그가 무시했던 사람들도 그랬다. 그들 역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었을 터다. 하여 자업자득의 느낌도 강하다. 공장 강아지 돌봄이 주 업무인데도, 여전히 본사 부장 출신임을 내세우는 김낙수 안전관리팀장을 볼 때면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감출 수 없다.

사진제공=SLL, 드라마하우스, 바로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측은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 김 부장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고길동의 짜증, 히로시의 미소, 김낙수의 한숨엔 각 시대를 살아낸 한국 중산층의 초상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쌓아온 하루하루가 훗날 덧없는 삶이었다 생각된다면 그만큼 허망하고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김 부장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가 낙향의 삶을 마치고, 금의환향하기를 응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충만한 성공을 위해 노력했기에 공허해진 그의 삶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젊은 시절 쌓아왔던 인생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왔다. 서울에 자가가 있어야만, 대기업 부장이어야만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생 골프 18홀 중 이제야 9홀을 치고 있는 김 부장은 현재 벙커에 빠져 모래 속을 허우적대고 있는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남은 홀이 어떤 그림일지 아무도 모른다. 버디를 칠 때도 있고, 보기를 기록할 때도 있다. 운 좋으면 홀인원이 터질 수도, 운 나쁘면 워터 헤저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성적표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18홀의 완주를 누구와 얼마나 즐겁게 걸었는가’이다. 이 쉽고도 단순한 진실을, 일 잘하는 김 부장이 하루 빨리 눈치 채기를 바라본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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