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넬의 현재 'X : 3 / ?' [뉴트랙 쿨리뷰]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기자
2026.03.05 09:33
밴드 넬은 4년 만에 새 정규 앨범의 선공개곡들을 발표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프런트맨 김종완의 독보적인 음색과 밴드의 정체성이 담긴 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넬은 슬픔과 절망을 노래하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25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사진제공=스페이스보헤미안

음악 감상은 자발적 단절이다. 세상을 끄고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흔히 음악은 배경(BGM)으로 머물기 십상인데, 그럴 때 음악은 온전히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다. 사람과의 대화, 어떤 것에 빼앗긴 시선은 음악을 흐리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다른 일을 하기 힘들 듯, 극장에서 불을 꺼 관객의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듯, 음악도 과감한 단절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전하게 전해진다. 나에겐 밴드 넬의 음악이 특히 그랬다.

넬의 음악은 자신과의 대화이자 고백이고, 또한 참회이다. 적막의 수다를 펼치는 넬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우린 세상과의 단절을 감행해야 한다. 지난 2일, 그런 넬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건네는 넬의 인사는 창백하다. 아트워크는 무채색이고 'X : 3 / ?'라는 제목은 난해하다. 아마도 ‘X’는 10집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그 뒤의 '3 / ?'는 3월에 선공개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세 번을 나눠 10집을 공개해 나가겠다는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6집 ‘Newton's Apple(뉴턴스 애플)’ 사례를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래도 4년 여만의 정규 앨범이라 팬들이 오래 기다린 것도 있고, 또 시대가 앨범보단 싱글과 EP를 요구하기 때문에 결정한 방식인 것 같다.

넬의 프런트맨 김종완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구체적으론 그의 목소리에 관해서다. 울음과 환희가 교차하는 그 음색, 소년 같고 영혼 같은 그 독보적인 보이스 톤은 언제나 넬 음악 속 이야기와 연주를 이끌어 왔다. 자칫 구질구질해질 수도 있을 감정의 찌꺼기에 기품을, 성마른 좌절과 축축한 슬픔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는 김종완의 목소리는 브릿팝스러운 기타 톤과 함께 언제나 넬의 구심점으로서 기능했다. 듣는 즉시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기울이고 나면 설득되는 노래. 보컬리스트로서 이는 굉장한 장점이다. 인위적인 기교나 표현력과 궤를 달리 하는, 흔히 재능이라 일컫는 타고난 영역 차원이다.

어쩌면 넬은 김종완이다. 팀의 99.9퍼센트 곡을 쓰는 그의 목소리는 곧 넬의 정체성이다. 어떤 장르 변신에서도 김종완의 음색은 그 변신이 넬의 변신이라는 걸 누설한다. 한마디로 그는 넬의 매튜 벨라미(뮤즈)요 톰 요크(라디오헤드)이다. 혹여 밴드에서 사라지면 그 밴드도 사라지게 만들 존재라는 얘기다. 그런 넬의 음악에선 이미지가 되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 들린다. 멜로디와 리듬, 가사라는 이름의 각본이 있고 김종완의 연기가 있다. 이 모든 게 얽혀 듣는 이 각자 뇌리 속에, 마음에 음악은 영상을 펼쳐낸다. 이 피치 못할 감정의 파장은 넬을 들어야 할 이유가 되고 때론 그 음악에 나를 맡기는 명분이 된다.

아주 옛날 김종완은 넬의 가사가 '나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넬의 음악은 서정적인 팝을 기본으로 한 록이라고 했다. 이후 나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로, 팝을 전제한 록은 록이 가미된 팝으로 변해갔다. 지난 앨범 ‘Moments in between(모먼츠 인 비트윈)’의 ‘Sober’가 들려주었듯 그들이 여전히 라디오헤드를 듣고 있다는 것, 비요크(Björk)를 더해 "역시 그 시절 음악이 좋다"고 말한 김종완의 최근 발언은 그래서 내 이야기 같은 가사, 팝적인 록이라는 가치를 포함한 자신들의 뿌리를 계속 안고 가겠다는 아티스트로서 다짐처럼 들렸다.

새로운 세 곡들 중 가장 넬스러운 ‘Deep Inside’를 들으며 나는 그 다짐을 의심할 수 없었다. “더 선명하고 깨끗하게 남는 타지에서의 고독”이 주제인 만큼 대만에서 촬영한 곡의 뮤직비디오는 20년을 훌쩍 넘기며 이어온 이들의 트렌드 감각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김종완의 투명한 팔세토 창법이 곡 전체를 뒤덮는 ‘Deep Inside’의 아스라한 감성은 언뜻 검정치마나 잔나비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 살얼음 같은 감성의 원조가 자신들임을 넬은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Deep Inside’에서 기존 넬을 들을 수 있었다면, 시규어 로스 같은 첫 곡 ‘Farewell Song’과 세 번째 곡 ‘I Will Always Be’에선 지금의 또는 앞으로의 넬을 들을 수 있다. 두 곡 모두 6분에 가깝거나 과거 ‘Act 5'처럼 6분을 넘김에도 음악은 지루하지 않다. 부드럽거나 고요하고, 웅장하다 침잠하는 이 단정한 혼돈은 넬의 음악이 30년 가까이 거듭해 온 진화의 현재형이다. 5집 ‘Slip Away(슬립 어웨이)’를 다듬었던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진행한 이유가 저 노래들에선 들린다.

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내향적이리라 추측해 본다.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도 많고 상처도 잘 받는다. 해의 장조보단 달의 단조에 더 가깝다. 넬은 저들이 저마다 품은 단조의 한숨이 쨍한 장조의 위로보단 비슷한 단조의 그늘에서 더 깨끗하게 걷힌다는 걸 아는 밴드다. 넬은 슬픔에 슬픔을, 절망에 절망을 겹쳐 그 부정성을 지워내는 음악을 만들 줄 안다. 그토록 슬프고 스산해도 '내향인'들이 25년째 넬에게 열광하는 단 하나 이유라면 바로 그것이리라. 그리고 그들 나이 이제 지천명을 향하고 있다. 여전히 단조에 단조로 맞서며 장조의 회복을 꿈꾸지만 그들의 방법론만은 '믿어선 안 될 말'의 찢어지는 절규보단 'I Will Always Be'의 신비로운 고독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물론 이 역시 늘 그래왔듯 지금 김종완이 혹은 멤버 중 누군가가 겪은 일, 품은 감정, 당면한 상황의 반영일 터다.

우주 유랑단(Space Bohemian). 이번 선공개곡들을 들으며 나는 2016년 밴드가 세운 레이블 이름이 2026년 밴드의 음악 색깔을 설명하고 있구나 싶었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