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염혜란의 열연으로 어루만진 시대의 상흔 [종합]

한수진 ize 기자
2026.04.02 16:58

상업 영화로 처음 다룬 제주 4·3 사건
1949년 국가 폭력과 1998년 학교 폭력 병치 서사
오는 15일 개봉

영화 '내 이름은'은 1949년 제주 4·3 사건과 1998년 학교 폭력을 병치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미스터리를 다뤘다. 정지영 감독은 제주 4·3 사건을 상업 영화로 처음 다루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을 택했고, 염혜란은 기억을 잃은 무용 교사 정순 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쳤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연대의 메시지를 강조하며 오는 15일 개봉한다.
'내 이름은' 스틸 컷 / 사진=CJ CGV, 와이드릴리즈

아픈 역사를 어루만지는 숭고한 연대와 치유. 거장 정지영 감독과 배우 염혜란이 스크린 위에 찬란하고도 시린 시대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내 이름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는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배우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이 참석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이름은'은 1998년과 1949년의 시간을 교차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묵직한 미스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세 소년 영옥(신우빈)과 까맣게 잊힌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헤란)의 궤적을 쫓는다.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인 제주 4·3사건을 상업영화로 만든 첫 번째 영화로,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돼 극찬받았다.

메가폰을 잡은 정지영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교포들과 외국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은 확인했지만, 막상 한국의 관객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궁금하다"며 설레는 소회를 밝혔다.

'내 이름은' 스틸 컷 / 사진=CJ CGV, 와이드릴리즈

그는 제주 4·3사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상업영화로 끌어온 계기에 대해 "처음에는 이념이나 남북 문제로 얽힐까 봐 조심스러워 피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찾아간다'는 서사의 발상이 무척 매력적이었다"며 "이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 치열하게 각색하며 서사를 구축했다. 관객들이 4·3사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1949년의 거대한 국가 폭력을 1998년 영옥과 전학생 경태(박지빈)가 엮인 교실 안의 학교 폭력과 정교하게 병치시킨다. 정지영 감독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대체로 외부인이 들어와 질서를 재편하려 할 때 시작되고 이는 곧 집단 폭력으로 번진다. 비단 국가 폭력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나 학교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이 구조를 서사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 후반부의 역사적 폭력 장면이 관객에게 너무 느닷없고 끔찍하게 다가갈 것을 우려해 학교 폭력이라는 완충지대를 둔 측면도 있다"며 "과거와 현대 모두에서 등장하는 폭력의 세습을 연결해 보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극의 중심에서 묵직한 열연을 펼친 염혜란은 해리 현상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무용 교사 정순 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 염혜란은 "커다란 아픔을 온전히 표현해 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면서도 "가장 공감했던 감독님의 디렉팅은 '이 인물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깊은 아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일상생활을 묵묵히 이어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내 이름은' 스틸 컷 / 사진=CJ CGV, 와이드릴리즈

염혜란은 캐릭터에 접근하기 위해 생존자들의 증언집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창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분들의 날것 그대로의 언어가 연기에 큰 도움을 줬다"며 "실제 있었던 비극이기에 접근이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대본이 지닌 문학적 매력에 끌렸다.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묻고 있어서 좋았다. 특히 주인공이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가해자의 딜레마까지 안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라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작품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정순이 극 중 내내 착용하는 선글라스는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타포다. 이에 대해 염혜란은 "선글라스는 참혹한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는 상징적인 도구이자 방어 기제"라며 "후반부 고통의 장소인 보리밭에 이르러 선글라스를 벗는 행위는 비로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면에서 정순이 추는 춤을 위해 염혜란은 과거 연극 무대 시절 익혔던 한국무용을 더욱 치열하게 연습했다.

정지영 감독은 '내 이름은'으로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연대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정 감독은 "아직도 제주에는 그날의 트라우마를 앓고 계신 분들이 많다.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한 사람의 외로운 저항이 아니라 아픔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연대라고 생각한다"며 "정순이라는 주인공은 곧 우리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관객들이 주인공의 삶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맛보고 나름의 해석을 더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내 이름은'은 기획 단계부터 9,778명에 달하는 시민과 도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 기반을 다진 뜻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5분간의 후원자 엔딩 크레딧은 영화 안팎으로 뜨거운 연대의 메시지를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1949년의 핏빛 비극과 1998년의 쌉싸름한 봄을 교차하며 진정한 이름과 자아를 찾아가는 치유의 서사 '내 이름은'은 오는 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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