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잃었다"...변영주 감독이 기억하는 '나의 아군' 이선균

김희정 기자
2026.04.26 15:18

영화계에서 감독과 배우의 관계는 흔히 창작자와 도구, 혹은 조력자로 정의되곤 한다. 하지만 변영주 감독에게 배우 이선균은 그 이상의 존재였다. 최근 방은진의 유튜브 채널 '씨네드라이브'에 출연한 변 감독은 고(故) 이선균을 향해 "배우 한 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동지'를 잃은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영주 감독은 2012년 작 '화차'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제작비 16억 원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작진과 배우들의 유일한 목표는 이 영화를 '30억 원대 영화'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산이 부족해 특수 장비를 빌리는 날이면 배우들의 감정 신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장비 대여료를 아끼기 위해 장비가 필요한 샷을 먼저 찍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장면은 가장 마지막에 배치했다.

감독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이선균은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제까지 시켜놓고 뭘 할 수 있냐 없냐를 묻나. 하겠다"며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 감독의 무리한 요구조차 작품을 위한 헌신으로 받아들였던 그의 모습은 변 감독에게 큰 힘이 됐다.

방은진의 유튜브 채널 '씨네드라이브' 화면 갈무리

이선균의 천재적인 감각이 빛난 순간도 있었다. 용산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종된 약혼녀 선영(김민희 분)을 마주하는 클라이맥스 신. 해가 지기 직전,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승부를 봐야 했던 긴박한 상황에서 이선균은 대본에도 없던 첫 마디를 던졌다. "잘 지냈어?"

변 감독은 순간 '엔지(NG)'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그 대사가 가진 힘에 압도당했다. 차가웠던 시나리오에 온기를 불어넣고, 캐릭터의 복잡한 심경을 단 한마디로 관객에게 전달한 것은 오롯이 이선균의 몫이었다. 그는 촬영이 끝난 후에도 녹초가 된 감독을 횟집으로 불러내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을 챙기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선균에 대한 그리움은 바다 건너 일본의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에게도 닿아 있었다. 원작자는 한국판 '화차'를 너무나 아꼈고, 특히 이선균의 연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후, 일본 측 출판사 대표가 그의 묘소를 찾아 인사를 전했다는 일화는 먹먹함을 더한다.

2012년 영화 '화차'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고 이선균 배우./사진=머니투데이 사진DB

미야베 미유키는 이선균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며, 과거 판권 문제로 제작되지 못했던 소설 '이유'의 영화화 권리를 변 감독에게 다시 제안했다. "이선균과 함께 만들기를 바랐던 작품을, 이제는 당신이 그를 기억하며 만들어달라"는 뜻이었다.

변 감독은 인터뷰 내내 그를 '나의 편', '아군'이라 칭했다. 수많은 명배우가 존재하지만, 감독에게 진심으로 '내 편'이라는 확신을 주는 배우는 흔치 않다는 고백이다. 이선균이 남긴 공백은 단순히 스크린 위의 빈자리가 아니라 한국 영화라는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 나가던 동료를 잃은 깊은 상실감으로 남았다.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이선균은 2023년 12월 2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차 안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 이후 수사 과정에서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 정보 유출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

그를 향한 회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변 감독은 당시 수사 과정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배우 이선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동지적 숨결'은 변영주 감독의 차기작 속에,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관객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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