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반환점을 돌았다.
총 12부작으로 방송을 시작한지 4회 만에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10%를 돌파하고 순항 중이다. 아이유라는 톱스타와,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로 신드롬급 인기를 얻은 변우석의 만남으로 캐스팅에서부터 높았던 관심이 드라마 성공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에도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 신분제 사회라는 가상의 설정 아래 한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벌이지만 신분이 평민인 여자 성희주(아이유)와 왕의 아들이지만 왕이 되지 못해 슬픈 남자 이안대군(변우석) 사이의 신분 타파 로맨스다.
‘21세기 대군부인’의 로맨스는 익숙한 ‘계약 연애/결혼’ 스토리다. 서로 감정이 없지만 각각의 필요가 맞아 연인을 가장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진짜로 사랑이 싹트는 스토리다. ‘풀하우스’나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 자주 사용되는 구조이고 관련 작품이 상당히 많다.
성희주는 캐슬그룹 둘째로 금수저이고 화려한 외모와 비상한 두뇌는 물론 지독한 승부욕까지 갖췄다. 하지만 평민인 데다 서출이라 사업에서도 가정에서도 성취만큼 평가받지 못한다. 이겨내고자 안간 힘을 쓰다가 신분타파 도구로 왕족과의 결혼을 생각해낸다.
이안대군은 조카의 섭정으로 대비 측의 온갖 견제를 받는 자신에게 성희주의 재력과 능력이 도움이 될 거라 여기고 결혼을 결심한다. 둘은 처음엔 대립하고 투닥대지만 비슷한 점도 많고 상대를 점차 이해하면서 닥쳐오는 난관에 서로를 챙기다가 점점 가까워진다.
‘계약 결혼’ 로코는 초반 코미디, 후반 로맨스 비중이 높다. 사랑이 없다가 회를 거듭하면서 무르익어야 하니 초반에는 코미디가 극의 재미를 채우고 후반부는 로맨스가 책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1세기대군부인’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는 코미디가 재미를 이끌었고 이제부터는 로맨스가 커져갈 분위기다.
계약 결혼이라는 다소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드는 해프닝과, 둘이 의도와 다르게 애정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코미디가 발생한다. 시청률이 요즘 드라마 대성공 기준인 10%를 어렵지 않게 돌파한 것은 두 주인공의 스타성, 왕실 이야기의 판타지 등과 함께 극의 기둥인 코미디의 재미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데 한 몫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코미디는 몇몇 조연들의 활약도 있지만 사실상 아이유가 총대를 메고 있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드림’을 통해 단련된 코미디 연기는 ‘21세기 대군부인’에 와서 한 작품을 책임져도 될 만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아이유는 이안대군과의 플러팅에서, 그리고 기타 괴팍스러운 모습에서 선을 지킨 과장과 능글맞음으로 코미디 연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 ‘21세기 대군부인’ 출연자들의 연기가 오글거린다는 평도 있지만 이는 코미디 설정을 진지하게 바라본 탓일 수도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의 코미디가 성공적인 데는 성희주 캐릭터의 덕도 크다. 대개의 로코 여주인공이 고난 속에서도 밝은 모습과 겸손함과 착한 태도를 보인다면 성희주는 화가 많고 자기 과시에 (사업을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관종이며 지저분한 수단도 불사하는 극악스런 측면도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가 수월하다.
흔히 드라마 주인공으로 잘 채택되지 않는 저런 반영웅적 특성들은 어둡고 무겁게 묘사하지만 않으면 코믹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쉽다. 대개는 정돈된 모습인 드라마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밝은데 위악스런 캐릭터는 우스광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희주가 반영웅적 특성만으로 채워져 있다면 대중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평민에 서출이라는 사연이 있고 공정한 기회를 바라고 노력하며 공공선을 지향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화가 많고 자기과시적이기는 하지만 궁인 등 자신을 경계했던 이들을 진심과, 같은 눈높이로 대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호감 넘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성희주는 한국 드라마 여주인공 캐릭터 중 최신형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성희주의 사연 있고 속은 여리고 정 많은 내면 같은 측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여주인공 특징들이다. 하지만 자기과시에 극악스럽거나, 재벌2세에 만족하지 않고 왕족과 결혼하려 하는 거대한 야망을 내보이는 여주인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입헌군주제라는 소재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부분에서는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왕과 궁 생활과 관련된 스펙터클한 모습이 너무 적다는 이유다. 하지만 왕이라는 가장 고전적이고 레트로한 설정과 만난 최신의 여주인공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여주인공 캐릭터의 신선함은 드라마 남은 부분에서 로맨스가 강화되면 억제될 가능성도 있다. 무르익는 로맨스에서는 아무래도 주인공들이 정서적으로 고양되면서 진지하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희주가 기존 여주인공 캐릭터에 반역적이라 흔한 흐름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드라마를 끝까지 지켜봐야겠다.
최영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