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 정규작은 각별하다. 이전에 발표한 싱글 또는 EP가 습작, 워밍업이었다면 정규 앨범은 본게임이다. 소설이나 영화로 치면 중단편에서 장편으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경우 싱글, EP 위주로 활동해 나가는 탓에 발표 주기가 길게는 몇 년 단위로 늘어난 정규 음반은 그 자체 팀의 성숙, 증명으로서도 기능한다. 거기에 ‘1집’이 붙게 되면 이는 싱글, 미니앨범(EP)에 이은 또 하나의 데뷔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그룹의 성숙을 증명할 두 번째 데뷔. 그것이 2020년대 케이팝 아이돌계에서 정규 1집이 갖는 의미다.
지난 8일, 보이그룹 보이넥스트도어(보넥도)도 데뷔 3년 차에 정규 데뷔작을 발표했다. 제목은 ‘Home’. 집(Home)이란 데뷔 앨범의 또 다른 은유가 될 수 있는데, 발표하는 주체의 비밀스러운 본질이란 점에서 그렇다. 집은 또한 떠나는 출발점이자 머무는 기착지, 돌아오는 도착점이기도 해서 보넥도의 정규 1집 제목은 여러모로 ‘그룹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과연 뚜껑을 열어보니 그 메시지는 실재였다. 우선 팀 내 메인 크리에이터였던 명재현, 태산, 운학 외 멤버 모두가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그 창작의 재료는 물론 미니앨범 다섯 장을 낸 그룹으로서 그간 겪은 감정과 기억이다. 특히 지난 음악에서 꾸준히 다뤄온 청춘의 성장이나 아픔, 사랑과 이별에 멤버와 팬이라는 ‘존재’가 더해졌다는 데서 이번 앨범의 성숙 또는 숙성도가 감지된다. 나는 이를 “아이 중에서는 가장 큰 나이, 어른 중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로 바라보았던 스무 살에 대한 그룹의 독창적 성찰이나, 첫사랑 이야기 3부작에서 비교적 다른 주제를 다룬 ‘lifeiscool’의 연장선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했다.
알다시피 보넥도의 장점은 쉬움이다. 쉬움은 곧 친근함과 같다. 쉽고 친근한 성향은 보넥도뿐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을 노리는 모든 아티스트의 공통 전략이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불특정 대중은 어렵고 까다로운 것을 썩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도 음악도 다 그렇다. 그래서 보넥도 음악의 주제는 거의 일상이고 배경도 대부분 일상이었다. 소년이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마음과 상황을 단계별로 다룬 세 곡을 담아 세 곡 모두에 뮤직비디오를 입힌 데뷔 싱글에서 이들은 한없이 밝았다.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건 애초에 이들 세상엔 없다는 걸 보넥도는 음악과 가사와 영상과 춤으로 거듭 고백했다. 팬덤 원도어(ONEDOOR)는 그런 자신들의 아이돌에게 각자가 겪은 감정과 경험이 보편적인 신호로서 전해지길 바랐다. 마치 BTS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환호한 아미의 전례처럼 말이다. 당연히 보넥도는 팬덤의 기대에 부합했다.
보넥도에게 쉬움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정체성이기도 하다. 옆집 소년들이라는 팀 이름이 벌써 쉽고 일상적이다. 물론 쉽다고 해서 가볍고 심심한 미니멀을 이들의 지향점으로 봐선 곤란하다. 반대로 보넥도는 소속사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지코와 팝 타임의 도움을 받아 트렌드를 염두에 둔 알찬 시도를 매 곡에 갈아 넣는다. 그들이 네 번째 EP에서 내세운 노 장르(No Genre)라는 장르는 그런 팀의 실험성, 다재다능함을 어필하려는 매개였다. 그것은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최소한 소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그룹의 자신감이었다. ‘Earth, Wind & Fire’의 하이퍼 팝, 보넥도 식 다이너마이트(BTS)쯤 될 ‘Nice Guy’, 아울러 ‘Call Me’의 재지함은 물론 이번 신작의 첫 트랙 ‘06070’의 재즈 힙합까지. 그러고 보면 보넥도는 투어스와 코르티스라는 하이브 산하 두 보이그룹을 합쳐놓은 듯도 하다.
새 앨범 ‘Home’은 보넥도의 저 모든 특이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단순히 입소문(‘VIRAL’)에만 기대지 않을 안정된 완성도를 지닌 타이틀곡을 비롯해 밝고 청량했던 기존 팀 이미지에 힙합의 어둠을 심은 선공개 싱글 ‘똑똑똑’, 시원한 록 트랙 ‘ADIOS!’, 제목처럼 분위기를 수시로 뒤집는 재치 만점 트랙 ‘Upside Down’, 바다와 다이빙이라는 메타포로 사랑을 노래한 ‘DIVE’, 노래하고 듣는 모두에게 부모님의 고마움을 되새기게 하는 발라드 ‘기억해줘요’, 팬들에게 보내는 노래 ‘I Wonder’ 등 장르와 주제 모두에서 보넥도는 정규 데뷔작의 가치, 즉 성장과 재출발을 깊이 음미하고 있다. 그리고 동네 우편번호로 추억한 연습생 시절을 지나 끊임없이 도전해 온 지난 3년 동안 매 순간 진지했을, 최선을 다했을 워밍업의 결실은 꽤 찬란하다. ‘케이팝의 화석이 되겠다’ 정도의 의지가 엿보이는 재킷 사진에 어린 자신감도 그래서 충분히 와닿는다. 성공적인 두 번째 데뷔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