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걸그룹들은 '서머퀸'을 자처하며 청량하고 뜨거운 콘셉트의 신곡을 앞다퉈 내놓는다. 색깔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서 존재감만으로 결이 구분되는 팀이 있다면 단연 레드벨벳이다. 이들이 그리는 여름은 단순히 표면의 온도가 아니라 쌓아 올린 시간의 두께에서 차이가 난다.
레드벨벳은 지난 3일 새 미니앨범 'Velvet Summer'(벨벳 서머)를 발매했다. 2024년 6월 'Cosmic'(코스믹)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다섯 멤버가 모두 참여한 완전체 컴백이다. 레드벨벳이 앨범명에 여름을 직접 내세운 것은 2017년 'The Red Summer'(더 레드 서머), 2018년 'Summer Magic'(서머 매직)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그만큼 작정하고 준비한 계절 앨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레드벨벳의 여름은 늘 화력이 셌다. '빨간 맛'과 'Power Up'(파워 업), '음파음파'로 이어진 흐름은 직관적이고 발랄한 멜로디, 강렬한 에너지로 '서머퀸'이라는 별칭을 굳혔다. 이후 데뷔 8년 차였던 2021년 'Queendom'(퀸덤)에 이르러서는 한결 여유로운 무드로 방향을 틀며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Velvet Summer'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뜨겁게 달아오르기보다 은근하게 데워지는 쪽, 청량한 파랑보다 노을 진 해변의 주황빛에 가까운 온도다.
타이틀곡 'Surfin' Boy'(서핀 보이)가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른한 보사노바 기타와 여유로운 레게 리듬, 그리고 감각적인 하우스 그루브가 어우러져 청량하면서도 몽환적인 감상을 안긴다.
멤버 조이가 단독으로 쓴 가사에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눈부신 기억을 만들어가자는 마음이 담겼다. 이전까지 레드벨벳의 여름 히트곡들이 한낮의 태양 아래 있었다면 이번 곡은 해 질 무렵 해변에 걸터앉은 듯한 분위기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는 세이렌과 개구리 왕자를 모티프로 삼아 레드벨벳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곡의 몽환적인 매력을 극대화했고, 인어로 변신한 다섯 멤버의 모습이 청량함 속 기묘한 긴장감을 더했다.
수록곡들도 저마다의 결로 앨범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Hot Girls Cold Vibe'(핫 걸스 콜드 바이브)는 쿨한 여름밤의 에너지를 담았고, 'Orchestra'(오케스트라)는 사랑의 고조를 우아하게 풀어냈다. 'Hula Hoop'(훌라후프)는 다시 만난 인연의 설렘을 그렸고, 'Hawaii'(하와이)는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잔잔한 위로로 앨범을 마무리한다.
두 장의 이전 여름 앨범과 비교하면 'Velvet Summer'의 온도는 낮고 은근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여유와 깊이가 있다. 앨범명처럼 벨벳이라는 질감을 완성해 낸 건 여러 번의 여름을 지나며 계절의 온도뿐 아니라 결까지 다룰 줄 알게 된 레드벨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