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쇼핑몰' 시즌1에서 정진만(이동욱)은 자주 "잘 들어, 정지안"이라고 말문을 떼며 조카 정지안(김혜준)이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시즌2 피날레를 장식하는 건 삼촌에게 "잘 들어, 정진만"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지안의 모습이다. 삼촌의 보호를 받던 조카가 같은 눈높이에 선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 꽤 여운 있는 엔딩이다. "잘 들어, 정진만"은 김혜준이 직접 제안한 대사이기도 하다.
"원래 8회 제목이 '잘 들어, 정진만'이었는데 마지막에 지안이 직접 말하면 좋을 것 같아서 감독님께 제안했어요. 또 둘이 바빌론에서 재회하는 장면이 있는데 시즌1 재회 신에서는 삼촌이 지안을 안아줬다면 시즌2에서는 지안이 삼촌을 안아줘요. 그 대비를 통해 관계의 변화를 더 선명하게 그리고 싶었죠. 삼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도 모르게 삼촌을 닮은 모습까지 받아들인 지안의 성장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는 쇼핑몰의 새로운 대표가 된 지안이 살아 돌아온 진만과 함께 바빌론의 글로벌 세력에 맞서 반격하는 이야기다. 시즌1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던 지안은 이번 시즌 자신 때문에 다치고 죽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먼저 총을 든다.
김혜준에게 시즌2 제작은 기쁨과 부담을 함께 안긴 소식이었다. 속편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시즌1이 사랑받았다는 의미였지만, 그만큼 달라진 모습을 증명해야 했다. 그는 부담을 책임감으로 바꿨고, 스태프와 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은 채 다시 지안으로 돌아갔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은 저뿐 아니라 제작진도 모두 가지고 있었어요. 시즌1을 정말 행복하게 찍어서 그 현장이 달라질까 봐 걱정했는데, 시즌2를 찍으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지안뿐 아니라 저 역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과정을 다시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액션의 결도 달라졌다. 시즌1이 맨몸으로 구르고 부딪치는 장면에 집중했다면 시즌2에서는 총기 액션이 늘었다. 김혜준은 액션 스쿨에서 총을 잡는 자세와 걸음걸이부터 다시 익혔고, 일상과 촬영장에서 소품 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배우들끼리 누가 탄창을 빨리 갈아 끼우는지 겨루기도 했다.
"시즌1보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맷집이 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웃음). 대신 시즌2의 지안이는 육체보다 정신적으로 더 많이 고통받아요. 희망을 품으려고 할 때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기잖아요. 그 절망을 연기하는 일이 슬프고 힘들었습니다."
특히 시즌2에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지안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각성시켰다. 시즌1에서 죽인 성조(서현우)의 환영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죄책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머더헬프 식구들이 차례로 희생되자 분노가 극에 달했고, 마침내 자신의 무간지옥을 받아들인 채 쿠사나기(정윤하)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김혜준은 "끊임없이 시련을 주시더라"라며 웃어 보였다.
지안의 궁극적 성장은 상실에서 비롯한 각성도 있지만 삼촌을 이해하는 데 있다. 삼촌이 있던 자리에 직접 서보며 그가 감당했을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닮아가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시즌1에서 진만이 지안을 품었다면 시즌2에서는 지안이 진만을 품으며 두 사람의 관계도 달라졌다.
"지안이가 삼촌 없이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보다 삼촌의 마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에는 삼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서보니 '삼촌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알게 되는 거죠. 그렇게 삼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도 모르게 삼촌을 닮아 있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안의 성장 포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 안팎에서 김혜준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된 건 실제 삼촌 같았던 이동욱이었다. 이동욱은 김혜준이 주인공으로서 흔들리지 않도록 묵묵히 힘을 보태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사실 시즌1 때부터 촬영장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그 밖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고 또 가깝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였어요. 시즌2 현장에서 이동욱 선배가 계속 '네가 주인공이잖아'라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저를 믿어줬고,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촬영할 때뿐 아니라 홍보 활동을 할 때도 늘 옆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라서 마음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같은 시기 김혜준은 tvN '최애의 사원'에서 첫 본격 로맨틱 코미디 주연도 맡았다. 총구를 겨누는 지안과 최애 앞에서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남다름은 온도가 정반대다. 배우로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 반갑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모습을 한 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 좋다. 제가 TV에 나와서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여전히 앳된 얼굴이지만 김혜준은 어느덧 데뷔 12년 차다. '킹덤' 시리즈와 '구경이', '킬러들의 쇼핑몰'을 거쳐 이제는 한 작품을 이끄는 주연 배우가 됐다. 카메라 앞에서도 제법 익숙하고 능숙해 보이지만 정작 김혜준은 연기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를 끊임없이 다시 현장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괴롭잖아요. 제 부족함을 계속 느끼게 되니까요. 그래도 어려움을 하나씩 깨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어떤 순간에는 희열도 느껴요. 아직 잘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사실이 제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원동력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