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이 '파묘'로 얻은 천만 관객의 신뢰를 유아인의 복귀에 걸었다. 제법 위험한 베팅이다. 작품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천만 감독이면 여론까지 넘어설 수 있다는 자만일까.
영화 '뱀피르' 측은 18일 유아인과 이성민, 이준혁, 도이, 윤경호, 최현욱의 캐스팅을 공식 발표했다. 대본 리딩과 고사까지 마쳤고 이달 촬영에 돌입한다.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유아인이다.
조연이나 특별출연도 아니다. 유아인은 이교도 집단을 추격하는 청부업자를 맡았다. 이야기의 시작과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이다. 출연진 크레디트에도 맨 앞에 이름을 올렸다. 장재현 감독은 상습 마약 투약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유아인에게 2028년 개봉할 대형 상업영화의 얼굴을 맡겼다.
유아인의 마약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촬영한 영화 '승부'와 '하이파이브'가 뒤늦게 개봉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두 작품은 이미 막대한 제작비와 수많은 관계자의 시간이 투입돼 있었다. 두 영화 모두 유아인이 주인공이었던 만큼 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작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뱀피르'는 다르다. 유아인을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했던 상황이 아니다. 떠밀려 품은 것이 아니라 복귀를 위해 직접 판을 깔아준 자발적인 선택이다.
유아인은 2020년 9월부터 2022년 3월까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케타민, 레미마졸람 등 의료용 마약류를 181차례 투약했다. 2021년 5월부터 2022년 8월까지 다른 사람의 명의로 44차례에 걸쳐 수면제 1,100여 정을 불법 처방받았다. 미국에서는 지인들과 대마를 흡연했다.
1심은 유아인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 원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이를 확정했다. 한두 차례의 충동적인 실수가 아니다. 장기간 반복한 상습 범행이다.
그런 유아인이 새 작품으로 돌아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최소한의 시간과 책임 있는 태도다. 그러나 '뱀피르'로 밟아온 복귀 과정에선 이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
유아인의 '뱀피르' 출연설이 처음 불거진 시점은 지난해 12월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5개월 만에 사실상 복귀 시점을 저울질하기 시작한 셈이다.
거짓말로 점철된 시작 역시 문제다. 장재현 감독과 배급사는 유아인의 출연설이 나올 때마다 "사실이 아니다", "확정된 바 없다"며 거듭 부인했다. 그러나 캐스팅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유아인의 복귀는 진솔한 사과나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돼버린 부인으로 시작됐다.
물론 마약 사건 이후 복귀한 배우들도 있다. 탑(최승현)과 주지훈, 하정우 등은 논란 끝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고 잘 활동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례로 유아인의 복귀까지 당연하게 볼 순 없다. 탑과 주지훈은 집행유예 기간을 모두 마친 뒤 수년의 공백을 거쳐 돌아왔다. 하정우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약 2년간 자숙했다. 유아인은 이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투약 횟수와 불법 처방량이 많은 데다가 아직 집행유예 기간조차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재현 감독은 무엇을 믿고 유아인을 품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연기력이다. 유아인이 뛰어난 배우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유아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력만으로 모든 잘못을 덮을 수 있다면 연예계에서 자숙과 복귀를 둘러싼 논쟁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대안을 제쳐두고 굳이 유아인을 선택했다면 연기력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장재현 감독은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거쳐 '파묘'로 천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컬트 장르를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고, 배우와 투자자를 동시에 움직일 힘도 얻었다. 유아인이라는 거대한 위험 요소를 안고도 대형 프로젝트를 출발시킬 수 있는 배경에는 장재현이라는 이름이 있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했느냐다. 장재현 감독은 유아인을 캐스팅하는 데 자신의 신뢰를 썼지만, 그 선택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데는 침묵했다. 작품만 잘 나오면 과정의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는 태도로 비친다.
작품 자체만 보면 '뱀피르'는 잘 뽑힐 확률이 높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력과 유아인의 연기력, 이성민·이준혁 등 배우진의 무게를 고려하면 완성도에 대한 기대는 충분하다. 그렇기에 이번 선택은 더 위험하다. 영화가 좋다는 이유로 성급한 복귀와 책임 없는 과정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든 영화가 잘못된 복귀의 선례가 돼서는 안 된다. 작품으로 모든 질문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다. 이제 주목할 것은 '뱀피르'의 완성도만이 아니다. 장재현 감독이 자신이 열어준 복귀의 문에 어떤 책임을 질지다.
더군다나 유아인의 투약 행태와 의존성을 직접 들여다봤던 1심 재판부는 "마약류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한 것으로 보여 재범의 위험성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부디 이번에는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또다시 피해가 돌아가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