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까이, 그러나 여전히 낯선, 연극 ‘클로저 Closer’ [스테이지]

박병성(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9.30 11:28

영화로 잘 알려진 30년째 전세계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공연
2005년 초연 이후 11번째 공연...대학로 예스24에서 12월6일까지 공연
최강희 장희진 홍종현 이도윤 배수빈 오만석 등 유명 배우들 대거 출연
오랜만에 연기자로 돌아온 최강희가 완성된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안나

연극 클로저는 1997년 런던 초연 이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국내에서는 2005년 초연 이후 11번째 공연이 대학로 예스24에서 12월 6일까지 진행된다. 작품은 앨리스, 댄, 안나, 래리 네 인물의 얽히고설킨 사랑과 욕망, 질투의 과정을 짧은 장면들로 압축하여 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배우 최강희가 안나 역을 맡아 특유의 따뜻하고 인간미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장희진, 홍종현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연극 '클로저'로 5년 만에 무대에 귀환한 배우 최강희. 사진제공=레드앤블루

대중에게 ‘클로저’는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웬이 주연한 영화로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거침없고 도발적인 대화 속에 사랑과 불륜, 욕망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 작품은 당시에는 낯설었던 성적 대화가 오가는 인터넷 채팅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원작은 연극으로, 1997년 런던과 1999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 흥행하며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05년 초연 이후 올해까지 11차례나 공연된 스테디셀러다. 특히 올해 공연은 최강희, 장희진, 홍종현, 이도윤, 배수빈, 오만석, 소주연 등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은다.

“안녕 낯선 사람.”

출근길 인파 속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앨리스와 소설가를 꿈꾸지만 현재는 부고 담당기자인 댄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 순간 앨리스는 달려오는 택시에 치이고 잠시 정신이 든 앨리스는 댄에게 "안녕, 낯선 사람"이라며 인사를 건넨다. 앨리스는 댄이 샌드위치를 만들며 식빵 가장자리를 잘라냈다는 사소한 이유로 그와 사귀기로 마음먹고, 댄은 도발적이고 예측 불가한 스트리퍼 앨리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다음 장면은 댄의 작가 프로필 사진 촬영장이다. 앨리스의 삶을 소재로 쓴 소설 출간을 앞둔 댄은 지적이고 성숙해 보이는 사진작가 안나에게 매료된다. 그는 안나에게서 앨리스와는 다른 안정감과 성숙함을 발견한다. 안나 역시 준수한 외모에 자신감과 위트를 갖춘 댄의 유혹에 반응한다. 안나는 댄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키스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앨리스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밀어낸다.

이어지는 인터넷 채팅 장면에서 댄은 안나를 사칭해 의사 래리와 노골적인 성적 대화를 나눈 뒤, 그를 안나가 자주 찾는 수족관으로 유인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안나는 자신을 잘 아는 듯 접근하는 래리를 경계하지만, 결국 댄의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안나는 위험하지만 끌리는 댄 대신, 예의나 품위는 없지만 솔직하고 다정해서 편안한 래리와 연인이 된다.

작품은 앨리스와 댄, 안나와 래리가 수년에 걸쳐 사랑하고 욕망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짧은 장면들로 압축한다. 시간을 촘촘하게 연결하기보다 관계가 시작되거나 무너지는 결정적인 순간만을 포착함으로써 서사의 밀도와 네 사람 관계의 긴장감을 높인다. 가령 안나와 래리가 수족관에서 만난 뒤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이후 장면에서는 관계의 균열을 드러낸다. 안나가 전시회에서 댄의 구애를 거절하는 장면 뒤에는 두 사람이 이미 1년 동안 비밀 연애를 이어온 시점이 배치된다. 다툼 속에서 드러나는 말들은 생략된 시간 동안 쌓여온 작은 균열들을 관객이 짐작하게 한다. 관객은 이들의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보다 그것을 해명하고 추궁하는 순간들을 통해 관계의 실체에 다가간다.

연극은 원세트 무대에서 두 커플의 공간을 겹쳐 다툼과 갈등의 순간을 교차시킨다. 마치 영화의 분할 화면 같은 연출로 같이 있는 이가 아닌 그곳에 없는 이를 욕망하는 이들을 보여준다. 결핌이 사랑 혹은 욕망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사진제공=레드앤블루 

“사랑이 있으면 보여줘”

작품은 솔직하고 자극적인 사랑과 불륜의 이야기 이면에 사랑과 욕망, 소유욕과 질투가 뒤섞여 작동하는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 댄과 안나가 부정하려 했지만 끝끝내 연인이 된 것은 사랑 때문일까, 욕망 때문일까. 떠나는 안나에게 이혼에 응하는 조건으로 섹스를 요구하는 래리의 마음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댄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고도 그를 기다렸지만, 진실을 강요하는 댄에게 질려 이별을 고하는 앨리스의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 이 감정을 명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순간에 이들은 그것이 집착과 욕망과 질투일지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앨리스의 이별 통보에 당황한 댄은 사랑을 호소하며 그를 붙잡으려 한다. 이때 앨리스는 “그 사랑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단지 몇 마디 들리는 사랑은 공허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댄과 앨리스의 만남부터 운명보다는 우연이 진실보다는 거짓이 깊이 관여한다. 앨리스는 댄이 샌드위치를 만들 때 식빵 가장자리를 잘라내는 모습 때문에 사귀기로 결심했지만, 댄은 평소 그렇게 먹는 사람이 아니라 그날 우연히 그렇게 했을 뿐이다. 또한 앨리스가 댄에게 들려준 과거와 이름조차 진실이 아니었다. 앨리스가 사랑한 댄은 실제의 댄이었을까, 반대로 댄이 사랑한 사람은 앨리스 자신이었을까, 앨리스라는 이름과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구성한 이미지였을까. 그럼에도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함께한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앨리스가 댄의 사소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댄이 앨리스의 이름과 과거를 진실로 받아들인 것처럼, 사랑은 본래 상대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는 나 자신을 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연극 '클로저'로 연극 무대 데뷔한 배우 홍종현. 사진제공=레드앤블루

“안녕 클로저!”

댄과 앨리스의 관계는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인사로 시작한다. 앨리스의 죽음 이후 댄은 미처 싣지 못한 부고를 안나에게 전하며 편지의 끝에 “당신의 클로저로부터”라고 적는다. 그러나 죽음 이후 앨리스의 본명을 알았다고 해서 그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뒤늦게 얻은 사실은 이미 끝난 관계를 회복시키지도, 그 관계의 의미를 온전히 설명해주지도 못한다.

우리는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야 사랑이 완성된다는 환상을 품는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적당한 거짓과 허위가 사랑을 유지시키기도 한다. 연극 ‘클로저’는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과연 사랑 때문인지 질문한다. 더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제목은 사랑의 욕망과 한계를 동시에 내포한다.

오랜만에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온 최강희는 안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전에 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안나의 세련되고 우아한 면모를 부각했다면, 최강희는 지적이고 성숙한 인물의 외면에 특유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결을 더해 자신만의 매력적인 안나를 완성한다.

박병성(공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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