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극장에 걸려 있지만 영화를 둘러싼 대화의 창은 하나둘 닫히고 있다. 리뷰 영상이 비공개로 바뀌고, 출연 배우의 광고에는 댓글을 달 수 없게 됐다. '암살자(들)'을 향한 역사 왜곡 비판은 배우와 평론가, 추천사를 남긴 동료들의 판단까지 추궁하는 일로 번졌다. 작품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다른 해석을 말할 자리가 줄어드는 풍경이다.
지난달 개봉한 '암살자(들)'(감독 허진호)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남은 의문을 형사와 기자들이 추적하는 영화다. 총성과 탄환, 수사 과정의 빈틈을 따라가며 공범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둔다. 일부 관객과 정치권은 이 구성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처럼 받아들이게 한다고 비판한다. 논쟁은 바로 그 가능성을 영화가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제시했는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확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주장에는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허진호 감독도 한 유튜브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를 죽이라고 시켰다는 내용을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시켰다고 해놓고 거기서 자기가 총을 맞는 걸 넣기엔 개연성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부분은 모순되고 개연성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암시 역시 영화의 표현이다. 직접 지목하지 않았더라도 장면 배치와 시선이 관객을 어떠한 유추로 이끌었다면 그 방식은 논쟁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상영을 중단하고 평가받을 자유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논증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상영 중단부터 요구하면 관객이 판단할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극영화의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의 증거가 될 수 없듯, 역사적 결론과 다른 상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돼서도 안 된다. 기록에 남은 의문을 어떻게 연결할지, 확정되지 않은 가능성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는 창작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 시도가 치밀할 수도, 허술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모든 표현의 옳음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시도를 내놓고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정치권의 개입은 이 경계를 더욱 위태롭게 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관람 거부 문구가 담긴 포스터를 공유했고, 국민의힘에서는 상영 중단과 허진호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 요구까지 나왔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대로 관람을 독려했다. 영화의 관람과 평가가 정치색의 진영을 가르는 기준이 되면 작품을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은 어느 편에 섰느냐는 추궁으로 바뀐다.
유해진의 광고를 둘러싼 항의는 그 압박이 어디까지 번지는지 보여준다. 출연을 문제 삼아 광고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댓글이 달렸고, 해당 광고와 브랜드 SNS 게시물의 댓글 기능이 제한됐다. 이민호·류혜영뿐 아니라 영화를 추천한 김고은·이영애의 SNS에도 비난이 이어졌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리뷰를 비롯해 영화 유튜버 지무비와 역사 강사 최태성의 관련 영상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출연과 추천을 향한 공격에 더해 영화에 관한 해설과 비평을 접할 통로까지 좁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다른 감상이 정치적 낙인이나 불이익의 두려움 없이 오갈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 자리가 확보돼야 영화의 성취와 한계도 제대로 드러난다. 총성과 탄환을 둘러싼 의문이 추적극의 긴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드는지, 후반부 언론 자유로 옮겨가는 서사가 앞서 쌓은 질문을 충분히 감당하는지 따져볼 수 있다. 결론을 유보한 방식이 역사 앞의 신중함인지, 의심만 키운 채 책임을 미룬 것인지도 논쟁할 만하다. 이런 판단이 쌓여야 작품에 대한 평가가 두꺼워진다. 정치적 찬반부터 정하고 장면을 그 결론에 끼워 맞추면 영화는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명작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잘못된 추론은 반박하고 부족한 만듦새는 혹평하면서도, 그 작품이 상영되고 서로 다른 감상이 오갈 자유는 지킬 수 있다. 이 원칙은 영화가 어느 정치적 입장을 불편하게 하든 같아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만났을 때 남겨야 할 것은 그 작품이 왜 부족한지에 대한 비평이다. 다음 창작자가 같은 주제를 떠올리는 것부터 두려워하게 만드는 선례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