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변요한, 스크린이란 낭만을 믿는 로맨티시스트

최재욱 ize 기자
2026.10.06 07:00

'타짜: 벨제붑의 노래'서 복수에 나선 주인공 박태영 역 열연
부담감이 컸지만 피한다면 비겁하다는 생각으로 출연 결정
극과 극 오가는 설정에 증량과 감량을 반복하다 저혈당 쇼크

배우 변요한이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 주인공 장태영 역을 맡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는 전작들의 무게감에 대한 부담을 극복하고 캐릭터를 위해 저혈당 쇼크가 올 정도로 치열한 체중 조절과 홀덤 특훈을 감행했다. 변요한은 극장이 주는 낭만을 믿는 영화배우로서 동료들과의 앙상블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사진제공=CJ ENM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위기가 매일같이 거론되는 시대에도, 끝내 스크린 위에 온몸을 던져 배우의 자리를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2026년 가을,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숨 가쁘게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영화배우' 변요한이 그렇다.

변요한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단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갇히길 거부하는 배우의 궤적 그 자체다. 영화 ‘경주기행’에서 이정은의 막내 딸을 빼앗아 간 빌런 역을 맡아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하더니, 이준익 감독의 ‘아버지의 집밥’을 통해 숏드라마 최초의 극장 개봉이라는 유의미한 도전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지금, 그는 20년 역사를 지닌 한국형 오락영화의 거대한 유산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장인 ‘타짜: 벨제붑의 노래’(감독 최국희, 이하 ‘타짜4’)의 타이틀롤 ‘장태영’으로 다시 한번 극장 한가운데 섰다.

부르면 어디든 달려가 맡은 몫을 끝내 해내고야 마는 집요함, "영화배우로서 극장이 주는 낭만을 믿는다"는 변요한. 허영만 작가가 구현한 방대한 대서사시로 관객 앞에 선 그를 만나 ‘타짜4’의 완주와 영화배우로서의 연기관을 들여다봤다.

사진제공=CJ ENM

# 운명처럼 다가온 '타짜: 벨제붑의 노래'

2006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는 2000년대 한국 오락영화의 정점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그 독보적인 아우라 탓에 2편(‘신의 손’)과 3편(‘원 아이드 잭’) 등 후속작들은 흥행과 무관하게 늘 1편이라는 거대한 벽과 비교당하는 숙명을 짊어져야 했다. 그런 프랜차이즈의 4편이자 완결편에 뛰어드는 일은 배우로서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결단이었다.

“처음 대본을 마주했을 땐 솔직히 너무 막연하고 두려웠습니다. ‘타짜가 또 나오나’ 싶은 생각도 스쳤고요. 1편의 거대한 레거시, 그리고 2·3편을 이끌었던 선배 배우들이 짊어졌던 무게감을 잘 아니까요. 하지만 ‘피하면 변요한은 하고 싶은 안전한 연기만 하는 배우로 남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거절하고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걸 스크린으로 본다면 제 스스로 너무 비겁하게 느껴질 것 같았죠. ‘잘해도 본전’이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배우는 가장 어려운 도전을 온몸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성장하잖아요. 문을 닫아야 한다면 내 손으로 잘 닫아보자는 마음으로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촬영 전 1편의 ‘고니’ 조승우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예의와 존경심을 담은 혼자만의 약속이자, 무언의 응원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조승우는 후배의 도전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이는 변요한에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동력이 됐다.

하지만 존경이 곧 답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변요한은 “1편을 뛰어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오만”이라고 선을 그었다. “2006년의 문법이나 행위를 2026년 지금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1편의 위대한 레거시는 그대로 존중해 두고, 걷어낼 건 과감히 걷어내며 우리 시대에 맞는 톤으로 현명하게 풀어내야 했죠. 고니와 비교될지언정, 관객들의 마음에 ‘장태영’이라는 인물을 뚜렷하게 남기겠다는 확신 하나로 임했습니다.”

# 테이블 위에서 발견한 '인간의 본질'

이번 작품은 고니의 혈육이나 인연으로 엮였던 이전 시리즈와 달리, 원작자 허영만 화백이 가장 아끼는 동명 원작을 토대로 완전히 독립된 세계관을 펼쳐낸다. 무대 또한 화투판에서 글로벌 홀덤판으로 확장됐다.

극 중 장태영은 타고난 끗발과 동물적 직감으로 온라인 카지노 사업을 성공시키지만, 고등학교 절친 박태영(노재원)의 질투와 배신으로 베트남에서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한다. 이후 전설의 타짜 곽동욱(조우진)을 만나 포커를 전수받으며 목숨을 건 복수를 다짐한다.

변요한은 역할을 위해 타짜 전문 자문가에게 수개월간 홀덤 특훈을 받으며 손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영화배우로서 그가 포착해 낸 본질은 테크닉이 아닌 ‘테이블 위에 놓인 인간의 민낯’이었다.

“보드게임방에 한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터라 처음엔 낯설었죠. 하지만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선수들을 관찰하며 깨달았습니다. 패 한 장과 칩이 오갈 때마다 사람의 야망, 질투, 시기, 열등감이 적나라하게 변하더군요. 화투처럼 말로 감정을 쏟아내기보다는, 상대를 마주 보고 마음을 읽는 포커페이스와 눈빛의 기운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캐릭터의 궤적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위한 외형적 변화 역시 처절했다. 잘나가던 시절의 체구와 베트남을 거치며 독기만 남아 단련된 육체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해 한계에 가까운 감량과 증량을 거듭했다.

“베트남 현지 촬영 당시 촉박한 시간 속에서 식단 조절과 운동을 몰아붙이다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다시 살을 찌워야 했죠. 하지만 그런 고통 덕분에 죽다 살아난 장태영의 육체와 정신을 온몸으로 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생하면 그 공기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반드시 보인다고 믿습니다.”

사진제공=CJ ENM

# 동료와의 앙상블을 이루는 쾌감

변요한은 장태영이라는 인물이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 이어 연이어 호흡을 맞춘 노재원(박태영 역)을 비롯해 미요시 아야카, 스윙스 등 동료들과의 차진 앙상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고백이다.

“‘내 색깔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장태영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걸요. 노재원은 현장에서 12시간 내내 연기만 파고드는 ‘지독한 연기 바보’입니다. 보고 있으면 저를 절로 각성시키죠. 제가 20~30대 선배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가 살아야 나도 살고, 내가 살아야 그 친구도 사니까요.”

10대 시절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교복 연기에 대해서도 “예전엔 패기로 입었지만 이번엔 노재원과 함께 입어 덜 쑥스러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들이 원하신다면 무대인사에서 교복을 입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단발성 쇼에 그치기보다는 관객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처럼 뜻깊은 공약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진심도 전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일본 배우 미요시 아야카에 대해서는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기 캐릭터다. 한국어 연기를 치열하게 준비했고 마지막 날엔 스태프 100명 전원에게 손편지를 써줄 정도로 감동적인 배우였다”고 돌아봤다. 강렬한 에너지로 맞붙은 스윙스에 대해서도 “그가 뿜어내는 기세가 워낙 커서 내 목소리를 일부러 쉬게 만들어 맞설 정도였다. 배우로서 그가 쏟은 노력과 진심은 정말 멋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제공=CJ ENM

# '타짜' 시리즈 마침표를 찍는 담담함

영화의 결말과 마지막 대사에 대해 변요한은 ‘과잉’ 대신 ‘초월’을 택했다. 복수라는 이름 아래 울부짖거나 분노를 쏟아내기보다는, 모든 소용돌이를 통과한 인물의 담담한 마침표를 그렸다.

“마지막에 감정을 폭발시키면 연기하는 입장에선 화려하고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도, 테이블 위 홀덤도 결국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이잖아요. 장태영은 지나간 상처와 과오를 덮고 차분하게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며 마침표를 찍습니다. 관객들에게 자극적인 재미 대신 씁쓸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올해 초 그룹 소녀시대 멤버 티파니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법적 부부가 된 변요한은 일상과 연기의 균형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연기할 땐 예전과 똑같지만, 주변 분들이 ‘훨씬 편안해 보인다’, ‘더 남자다워졌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연기보다 더 어렵고 소중한 인생의 단계를 밟고 있는 만큼 마음이 한결 단단해졌어요. 아내 역시 프로페셔널하게 제 치열한 과정을 다 이해하고 다독여 줍니다. 함부로 소비되지 않는 배우이자 제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영화배우’라는 자신의 본령에 대해 담담하지만 깊은 신념을 남겼다. 변요한은 '타짜4' 이외에도 이미 영화 '면도', '손없는 날', '파문'(가재) 세 편이나 촬영을 마쳤다. '영화란 매체에 더 집중하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드라마 쪽에서 안 불러주면 큰 일인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단한 건 없습니다. 찾아주고 불러주면 언제든 달려가 제 몫을 잘해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어디에 갇히기보다 자유자재로 오가며 관객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국 영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극장이 주는 낭만을 믿어요. 20년의 역사를 가진 ‘타짜’ 시리즈를 끈질기게 매듭지은 이 작품을 통해, ‘장태영’이란 인물이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면 영화배우로서 더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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