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자른 머리와 단정한 수트 차림, 여기에 선 굵은 이목구비. '나의 유죄인간' 속 설인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잘생쁨'(잘생기고 예쁨)이라는 표현과 딱 들어맞는다. 상대 배우 임시완과 나란히 선 모습도 흥미롭다. 예쁘장한 외모의 재벌 3세와 듬직한 수행비서. 언뜻 역할이 뒤바뀐 듯한 두 사람의 비주얼은 기존 로맨스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설인아의 진짜 매력은 외모가 아닌 연기에서 드러난다.
현재 방송 중인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극본 문수정, 연출 박단희)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재벌 3세 윤이준(임시완 분)과 그의 수행비서로 잠입한 특수부대 출신 형사 강재희(설인아 분)의 밀착 스릴 로맨스로 웹소설 '여자인 걸 왜 모르지?'를 원작으로 한다.
설인아가 극 중 연기하는 강재희.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남장을 하고 윤이준의 수행비서로 위장 취업한다. 의심스러운 상사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그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인한 체력과 거침없는 행동력에 엉뚱하고 유쾌한 면모까지 지닌 강재희는 여러모로 설인아에게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설인아는 존재만으로도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상대의 눈치를 보기보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필요하다면 몸을 던지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재벌 3세인 윤이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맞서는 강재희의 모습은 통쾌함마저 안긴다.
이러한 설인아의 연기는 임시완과의 호흡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민하고 까칠한 윤이준과 직선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강재희는 성격부터 대조적이다. 수행비서 면접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날을 세우는 윤이준에게 강재희 역시 조금도 기죽지 않고 맞선다. 하지만 상대를 제압하려는 윤이준의 과장된 반응과 달리 강재희는 그의 앞에서만큼은 불필요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두 배우의 상반된 연기 톤은 오히려 인물의 차이를 부각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조명의 미세한 변화와 백자의 달라진 위치를 알아챈 윤이준은 자신이 미쳐가는 건 아닐지 불안해한다. 그러다 강재희 역시 같은 변화를 감지했다는 사리에 조금씩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강재희에게 있어 윤이준의 신뢰는 임무 수행에 유리하면서도 정체가 발각될 위험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다. 가까워지는 듯하다가도 언제든 긴장감이 되살아나는 관계 속에서 설인아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중심을 지킨다.
이러한 설인아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tvN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 시리즈에서 보여준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설인아는 첫 시즌에서 철인 3종 경기, 두 번쨰 시즌에서 복싱에 도전했다. 타고난 운동신경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도전을 대하는 태도였다. 힘든 훈련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다시 도전했다. 승부욕을 불태우다가도 특유의 털털함과 유쾌함으로 웃음을 안겼다. 카메라의 유무와 상관없이 목표에 온전히 몰두하는 모습에서 배우가 아닌 인간 설인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능에서 보여준 강인함과 적극성은 '나의 유죄인간'의 강재희와도 맞닿아 있다. 물론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액션 연기까지 잘하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몸을 단련해 온 경험은 특수부대 출신 형사라는 캐릭터에 현실감을 더한다. 설인아 역시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단순히 액션을 잘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훈련받은 사람처럼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걸음걸이와 자세, 무게중심과 시선 처리까지 고민한 이유다. 몸을 사용하는 데 익숙한 배우의 강점에 캐릭터를 향한 세심한 분석이 더해진 셈이다.
설인아는 그동안 드라마 '사내맞선' '오아시스' '반짝이는 워터멜론' '노무사 노무진'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얼굴을 보여줬다. 사랑스럽고 발랄한 모습부터 시대의 아픔을 견디는 인물, 당차고 생활력 강한 캐릭터까지 연기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그에게 '나의 유죄인간' 강재희는 조금 특별하다. 남장이라는 설정에 기대기보다 강재희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한 연기에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배우에게 꼭 맞는 캐릭터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은 인물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가장 편안하게 펼칠 수 있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무쇠소녀단'에서 보여준 강인함과 털털함, 유쾌한 에너지에 배우로서 다져온 연기 내공이 더해지면서 설인아만의 강재희가 완성되고 있다. 억지로 강해 보이려 하지 않아도 강인하고, 일부러 사랑스러워 보이려 하지 않아도 사랑스럽다. '잘생쁨'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설인아의 진짜 매력이다.
조이음(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