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익숙한 음악을 다시 듣고, 익숙한 문화를 새롭게 생각한다. 익숙한 음악과 대중문화 현상을 깊이 있게 보고,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전합니다. 단순 음악 평가가 아닌, 아티스트의 이야기부터 K팝 산업의 흐름, 대중문화 전반까지 다루는 코너.
이 노래에서 제일 많이 퍼진 가사는 가사집에 없다. A2O LITE(에이 투 오 라이트)의 데뷔곡 'NEON'(니온)에서 반복되는 영어 가사 "Neon and beyond"가 '미혼앤비혼'으로 들리고, '이혼 앤 비혼', '위염 앤 비염'으로까지 번졌다. 사람들이 다르게 듣고, 웃고, 맞나 싶어 원곡을 다시 튼다. 한 번 '미혼앤비혼'으로 듣고 나면 원래 가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런데 이 데뷔를 웃음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만 본 셈이다.
지난 10월 13일 공개된 'NEON'은 이수만이 프로듀싱한 9인조 걸그룹 A2O LITE의 데뷔곡이다. SM 시절부터 그와 호흡을 맞춰온 유영진과 미국 프로듀서 뎀 조인츠(Dem Jointz)가 작사, 작곡, 편곡을 맡았다. 평균 연령 15세인 다국적 그룹으로, 소속사는 이들의 음악을 Z세대와 알파세대의 감각을 결합한 '잘파 팝'이라 소개한다. 멤버들은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미국 출신으로 구성됐고, 최연소는 열세 살이다. 발매 전날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데뷔쇼에서는 15인조 보이그룹 A2O SOUL과 나란히 무대에 섰다. 이수만에게는 SM 지분 매각 당시 맺었던 국내 프로듀싱 제한 약정이 만료된 뒤 선보이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가진 상징성은 처음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음악과 무대가 기대를 뒷받침해야 했다.
'NEON'은 짧은 후렴 하나만을 겨냥한 곡과는 거리가 있다. 3분 28초 동안 묵직한 베이스와 반복적인 후렴을 중심으로 보컬과 화음이 쌓이고, 아카펠라와 고음의 전개가 곡의 밀도를 높인다. 악기가 빠지고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는 구간은 앞선 리듬과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만들고, 이후 고음으로 확장되는 전개는 후반부에 힘을 싣는다. 처음에는 중독적인 후렴이 귀를 잡아끌지만, 끝까지 듣고 나면 여러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순간이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숏폼에 맞춰 곡이 짧아지는 흐름 속에서 반복적인 후렴의 매력과 풍성한 음악적 전개를 함께 가져가려는 선택이다. 특히 아홉 멤버가 주고받는 보컬은 많은 인원을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음악적 장점으로 바꾼다. 데뷔곡에서 각자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만큼, 함께 노래할 때 어떤 그룹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다.
세부적인 보컬 표현에서도 익숙한 음악적 색채가 발견된다. '시선 고정' 뒤로 들리는 "Incoming!"은 뎀 조인츠의 시그니처 사운드다. 샤이니의 'Don’t Call Me', 에스파의 'Supernova' 등으로 익숙해진 짧은 외침 하나가 과거의 음악적 기억을 불러낸다. ‘분석 중?’을 질문하듯 처리한 보컬의 억양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음을 높이기보다 짧은 가사에도 말의 뉘앙스와 개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유영진이 참여해 온 음악 특유의 극적인 표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샤이니의 ‘루시퍼’를 비롯한 과거 SM 음악이 연상되는 것도 이런 익숙한 문법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는 않는다. 익숙한 제작 방식이 새로운 멤버들의 목소리를 만나 또 다른 음악적 인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퍼포먼스에서도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제이블랙 등이 제작에 참여한 도입부 2인 안무는 시리와 아이찡의 움직임만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제작 과정도 흥미롭다. 제이블랙은 일반적으로 아이돌 안무 시안을 보내면 난이도를 낮춰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좀 더 어렵게 해달라"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밝혔다. 두 멤버는 트레이너 세 명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으며 안무를 완성했고, 제이블랙 역시 이를 소화해 낸 멤버들의 노력에 공을 돌렸다. 특히 아이찡이 한 발로 턴을 소화하는 동작은 어린 멤버들의 기량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숏폼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안무가 주목받는 시대에, 이들은 처음부터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내세웠다. 흥미로운 것은, 이 어려운 춤이 오히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유행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흥행의 순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NEON'은 발매 다음 날인 14일 밤 11시 멜론 TOP100 정상에 올랐다. 이후 가사를 다르게 듣는 밈과 AI 패러디가 화제를 더하며 관심의 폭을 넓혔다. 밈 하나가 모든 흥행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데뷔와 함께 형성된 기대에 음악과 퍼포먼스가 힘을 보탰고, 대중의 재해석은 노래가 더 넓은 곳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됐다. 데뷔 일주일 만에 음반 판매 성적 없이 음악방송 첫 1위를 차지한 성과 역시 음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심이 실제 음악 소비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도입부 안무는 다양한 인물의 얼굴을 합성한 AI 패러디로 확산됐다. 특히 지난 15일 써니가 공개한 이수만과 유영진의 AI 합성 영상은 이러한 유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 하기 어려운 춤이 익숙한 인물들의 얼굴을 만나면서 또 다른 즐거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유명인을 넘어 드라마 속 인물과 캐릭터까지 등장하며 대중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공식 뮤직비디오가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수 1,300만 회를 돌파한 것 역시 신인 그룹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숫자보다 흥미로운 것은 대중이 그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기획사가 준비한 챌린지에 참여하는 대신 스스로 재미를 발견하고 놀이의 범위를 넓혀갔다. 완성도 높은 무대가 제작자의 의도를 넘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세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반응도 눈길을 끈다. 평균 연령 15세인 멤버들이 부른 영어 후렴이 '미혼앤비혼', '이혼 앤 비혼'처럼 전혀 다른 세대의 일상적인 언어로 재해석된 것이다. '잘파 팝'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음악이 특정 세대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경험과 유머를 담아내는 노래가 됐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물론 이러한 재창작에도 경계는 필요하다. AI를 활용한 얼굴 합성은 재미와 별개로 당사자의 동의와 초상권 문제를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대중이 발견한 새로운 즐거움의 의미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청자의 경험과 상상력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유행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설계한 안무만이 대중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오히려 따라 하기 어려울 만큼 인상적인 장면이 새로운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관심은 'NEON' 이후로 향한다. 이수만과 오랜 제작진의 이름이 데뷔를 향한 기대를 높였다면, 앞으로 그 기대를 이어갈 주인공은 결국 아홉 멤버다. 이번 데뷔에서 인상적인 것은 대중의 취향을 좇아 쉽게 소비될 무대를 만들기보다, 완성도에 집중한 음악과 퍼포먼스가 뜻밖의 방식으로 대중의 놀이가 됐다는 점이다. 유행의 출발에는 우연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 관심을 붙잡은 것은 다시 듣고 싶은 음악과 다시 보고 싶은 무대였다. '미혼앤비혼'이라는 유쾌한 별명으로 노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앞으로는 A2O LITE의 이름과 목소리에 먼저 반응할지도 모른다. 이번 데뷔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출발점이었다.
박송아(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