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로커 한로로의 시대유감, '물음표'

김성대(대중음악평론가) ize 기자
입력 2026.11.09 07:10 수정 2026.11.09 07:14
싱어송라이터 한로로가 지난 5일 관계의 혼란과 시대에 대한 유감을 담은 새 싱글 '물음표'를 발매했다. 한로로는 90~2000년대 록 사운드와 일본 대중음악 정서 등을 흡수하면서도 비범한 노랫말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록의 자유와 공감을 통해 Z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며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록의 자리를 마련했다.
한로로/사진제공=어센틱

한로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콜드플레이와 김윤아를 떠올렸다. 구체적으로는 '입춘'에서 콜플의 'Yellow'를, '정류장'의 사운드 디자인에서 저들의 'Fix You'를 보았다. 물론 또렷한 진성과 예리한 가성을 지나 짙은 바이브레이션에서 서성인 뒤, 꺾이는 요들(Yodel)로 마무리하는 창법은 자우림의 싱어를 빼닮았다. 이는 2023년 곡 '해초'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나는 한로로의 개성에 의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것들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창작이라면, 한로로는 그걸 했을 뿐이니까. 크리에이터로서 당연한 일을 한 걸 굳이 서두에 언급한 것은 그다음에서 마주한 그의 비범함 때문이다. 비범함의 원류는 가사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첫인상에서 가장 주목을 끈 건 창법도 스타일도 아닌, 노랫말이었다.

한로로./사진제공=어센틱

'금붕어'가 대변하듯, 한로로의 음악에선 얼터너티브와 모던이라는 수식어를 단 90~2000년대 록 사운드가 동시에 들린다. 지난여름 방송인 겸 가수 강남이 기획한 '제이팝 리메이크' 시리즈에서 ‘잔혹한 천사의 테제(?酷な天使のテ?ゼ)’를 부른 것에서도 감지되었듯, 그녀는 일본 대중음악의 정서에도 관심이 많다. 아울러 록과 타 장르 사이 경계를 조목조목 허물기 시작한 2010년대의 글로벌 록 트렌드 역시 한로로 음악의 유전자 속에는 착실하게 붙박여 있다. 여기선 디안젤로와 비요크, 제프 버클리에게 영향받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푸마 블루(Puma Blue)가 알맞은 예이겠다. 한로로는 푸마 블루의 팬이다.

장르 팬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흡수해 자칫 클리셰의 함정에 빠졌을 법도 한 조건들 앞에서 그의 돌파구는 결국 ‘글’이었다. 가령 어둡고 날카로운 문체를 연구하는 한로로가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에서 쓴 "몇 번의 침을 삼켜야 가시를 녹일 수 있나" 같은 구절은 분명 시인의 언어다.

그녀는 '거울'에서처럼 일상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를 노랫말로 옮기기도 하지만, 한로로의 노랫말이 비범해지는 순간은 고독에서 길어 올린 사유가 특정 어휘로 둔갑할 때다. 그렇게 그의 가사는 시와 노래 사이에서 시도 되었다, 노래도 되었다 한다.

문학적인 표현을 현실에 대입해 또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건 따라서 한로로 예술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다. 그녀는 어둠에서 빛을 끌어올릴 줄 아는 아티스트다. 사랑이 세상을 구하는 모습,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는 마음을 한로로는 음악을 통해 만나려 한다. 프로로서 처음 만들었다는 '비틀비틀 짝짜꿍'부터 그는 늘 그래왔다. 청춘에게 말을 걸어 괜찮냐고 토닥인 뒤, 함께 헤쳐나가자고 말한다. "낯선 오늘에 매달린 내일 / 살아내려 폭풍우 치던 날들 / 나의 지금은 우리면 됐어"라는 가사가 있는 '너와 나'는 그래서 곡명 자체가 한로로 음악이 지향하는 작은 모토 같기도 하다.

한로로 '물음표' 이미지./사진제공=어센틱

2022년 데뷔 후 4년여 동안 사랑과 연대를 설파해 온 한로로가 지난 5일 새 싱글을 내놓았다. 제목은 '물음표'. 사운드는 높은 해상도의 고스 록(Goth Rock)과 얼터너티브 록의 중간에 가깝고, 주제는 올해 4월에 발매한 싱글 제목과 같은 '애증'이다. 다만 창작자 본인이 밝혔듯 오랜 친구 둘의 모순적인 감정을 다룬 곡이라고는 해도, 더 심오해진 가사("웅크려도 분열될 것만 같은 꿈의 성선설")나 "나는 오늘도 상대 없는 캐치볼을 합니다"라는 씁쓸한 곡 소개 글은 개인과 개인을 넘어 분열, 증오로 일그러져 가는 지금 우리네 모습에도 대입해 볼 여지가 있다. 점점 더 얼어가는 사람 간 이해와 공존의 위기 앞에서 음악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자문하고 있는 듯도 한 것이다.

불안한 우정의 굴레라는 원래 주제를 담은 공식 뮤직비디오와 한쪽에선 으르렁대고 한쪽에선 포옹하는 모습을 담은 퍼포먼스 비디오를 나누어 만든 것도 어쩌면 두 가지를 다 생각해 보자는 한로로의 의도가 아니었을지. 본디 하나로만 해석되는 예술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여타 장르들 사이에서 록은 한참을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것 같다. 엘비스 프레슬리 때부터 오랜 시간 영미권을 주름잡은 장르 계보로 록은 늘 극복의 대상이었고, 장르가 지닌 직선적 해방감은 음악 자체를 단순하고 쉽다는 오해의 늪에 빠뜨렸다. 재즈도 일렉트로닉도 종종 록을 그렇게 대했고, 클래식은 아예 무시에 가까운 태도를 록에 취해왔다. 탈출하는 록의 자유로움은 시끄럽다는 청각적 불편함으로, 수많은 이에게 위로를 건넨 록의 인륜적 가치는 철없는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몰이해로 이해되었다.

한로로 '물음표' 뮤직비디오./사진제공=어센틱

한로로는 그걸 정반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록을 극복하는 대신 수렴했고, 곡 '먹이사슬' 같은 직선적 해방감에서 소통의 방법론을 캐내었다. 외치고 터뜨리는 록의 자유, 바라보며 묻는 록의 공감으로는 자신과 닮은 젊은 영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다.

한로로는 그렇게 케이팝과 트로트와 블랙 뮤직으로 삼분된 한국 대중음악계에 당당히 록의 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중요한 건 그 자리가 Z세대의 것이라는 데 있다. 록의 전성기에서 한참 떨어진 그들에게 록의 매력을 알게 해 주면서 한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요계의 장르 다양화에 기여한 사람이 되었다. 관계의 혼란 또는 시대에 대한 유감을 함께 내포한 싱글 '물음표'는 그 기여도에 느낌표를 찍으려는 역설의 제목, 음악이다.

김성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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