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10㎞ 코스였다. 달리다 보니 여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록을 노리며 빠르게 치고 나가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게 페이스를 맞추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는 가족도 보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참가자와 호흡을 맞추며 함께 달리는 동반자도 있었다. 초보인 연인의 보폭에 맞춰 격려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마라톤을 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10㎞ 코스를 달리지만 사람마다 상황도 목표도 다르다는 것이다. 기록을 노리는 사람도 있고 완주 자체가 목표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방식이 자연스럽게 존중받는다. 나 역시 기록보다는 건강하게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10㎞를 한 시간 이내에 완주했다. 기록을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의 성과에 기분 좋게 마라톤을 마무리했다.
이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집 문제가 겹쳐 보였다. 평생 한 번 살까 말까 한 집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지인은 지방에 사는 부모가 집을 증여하겠다고 했지만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주택자인데 집을 증여받는 순간 1주택자가 되기 때문이다. 증여에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비거주 주택이 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인은 30년 넘게 살아온 집을 팔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오랜 세월 살다 보니 집값이 올랐는데 어느 순간 '똘똘한 한 채'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며 세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평생 혼자 살아온 또 다른 지인은 노후 대비로 오피스텔을 하나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월세를 받아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서다. 그런데 제도가 바뀌면서 거주용 오피스텔도 주택 수에 포함돼 다주택자가 됐다.
이들의 삶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정과 기준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집값 상승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평생 살던 집 한 채가 어느 날 투기의 상징처럼 취급되는 장면이다.
집값 안정은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투기 목적이 아니었는데도 집값 상승이나 제도 변화로 인해 투기 세력처럼 규정된다면 정책에 대한 공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의 기준으로 시장을 재단하면 정책은 쉽게 하나의 프레임에 갇힌다.
마라톤을 떠올려 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같은 10㎞라도 각자의 출발선과 목표가 다르다. 누군가는 기록을 노리고 누군가는 완주를 목표로 달린다. 부동산 역시 투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터전이자 노후 대비 수단이기도 하다.
정책이 시장을 설득하려면 이런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시장의 다양한 사정을 인정한 정교한 정책이 마련된다면 정책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내로남불'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