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하라는 건 좋죠. 근데 솔직히 눈치가 보입니다. 이러다 윗분들이 바뀌거나, 큰 일 한번 터지면 언제든 원상복귀 될 수 있으니 미리 몸 사리는 측면도 있고요."(A금융사 임원)
금융당국이 올 하반기 금융개혁 추진방향 중 하나로 금융권의 자율성과 책임성 강화를 꼽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최근 마련한 '은행의 자율성·책임성 제고방안'을 살펴보면 당국은 앞으로 은행이 금리나 수수료 등을 결정할 때 관여하지 않기로 원칙을 정했다. 가격변수는 철저히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다.
법령에서 정한 경우 외에는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종전에 근거 없이 가격에 관여했던 그림자규제나 관행도 모두 무효임을 천명했다. 특히 건전성이나 소비자 보호, 서민층 지원을 위해 극히 예외적으로 지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공식적인 행정지도 절차를 따르고, 그간 관행적으로 해오던 비공식·구두 지도는 근절하기로 했다.
반면 은행이 새로운 부수업무를 하기 위해 신고하면 현행 법규를 탄력적으로 해석하는 등 가급적 폭넓게 인정하는 방식으로 적극 허용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지원하기로 했다. 비본질적인 겸영업무에 대해서도 현행 포지티브(열거주의) 방식에서 네거티브(포괄주의)방식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 규율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당국의 '통 큰' 결정에도 정작 규제완화를 부르짖던 금융권은 미지근한 반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규제완화는 바람직한 결정이지만 실제로 금융사들이 얼마큼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현장에서 자율성에 대해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율성을 높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눈치 보며 한 결정은 면피할 방법을 찾기 급급할 뿐, 진정한 책임감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국은 은행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에 해오던 외부통제의 비중을 줄이고 금융사 내부통제 위주로 감독의 큰 틀을 전환키로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사들이 자율성 확보라는 과제에 연착륙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풀어줬는데도 왜 못해'라는 성급한 시선은 금융권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또 다른 유형의 보이지 않는 규제를 양산할 수 있어서다.
금융권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내부통제를 성숙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