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약기금 외면, 빈틈 노린 채권 재매각… 서민은 '추심 도돌이표'

이창섭 기자
2026.02.22 13:48

대부업 보유 채권, 공적 기금에 흡수되지 못한 채 매각 되풀이
"서민 대출채권, 재판매와 수익 창출 도구로만 여겨" 비판

새도약기금, 연체 채권 매입 현황/그래픽=임종철

취약계층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한 새도약기금이 출범했지만 정작 서민의 채권 추심 고통은 더 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업체들이 수익성 논리에 따라 법망 안에서 대출 채권 재매각을 반복하고 있어서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매각하고, 채무자에게 일부 상환을 유도해 추심을 이어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대부업체 중심으로 최근 무분별하게 대출 채권이 유통되면서 서민의 추심 부담이 더 커졌다. 2024년 10월 시행된 '개인채무자보호법'에 따르면 대출 채권 유통은 재매각이 최대 3회로 제한된다.

하지만 채권 추심 현장에서는 이 규정이 사실상 '최대 3번까지는 유통할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면서 최근 되팔기 중심의 영업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업체가 새도약기금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채권 되팔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장기 연체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다. 정부는 채권 매입가율을 액면가 대비 약 5%로 제시했다.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자산 특성을 반영한 가격이지만 대부업체는 민간시장 가격 선인 20%대를 고수하고 있다.

가격을 두고 정부와 대부업체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장기 연체채권이 공적 구제 절차인 기금으로 흡수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부업체 중심의 민간 추심시장에 채권이 머물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매입한 장기 연체채권 규모는 약 7조7564억원이다. 이 중에서 대부업 보유 채권은 3793억원에 불과하다. 약 5% 수준이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기금 협약을 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양혁승 새도약기금 대표이사, 여영현 상호금융대표이사,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정성웅 한국대부금융협회장, 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최훈 새마을금고중앙회 지도이사,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우욱현 신협중앙회 관리이사. 2025.10.01. jhope@newsis.com /사진=정병혁

제도권 금융회사 산하 추심업체는 채권을 매입한 후 이를 재매각하지 않고 보유·관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추심 대부업체는 채권을 인수한 뒤 약 1년가량 원리금을 일부 회수하고, 매입가와 비슷하거나 소폭 높은 가격에 다른 대부업체로 재매각해 수익 극대화를 노린다.

특히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채권을 다른 업체에 매각해 추심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매입한 대부업체는 '일부만 갚으면 감면해준다'는 방식으로 채무자를 속여 소액 상환을 유도한다. 채무자가 이를 믿고 일부를 상환하면 채권의 시효이익이 상실되면서 대부업체는 추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채무자는 '추심 도돌이표'에 노출되기 일쑤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금융권에선 이처럼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인 대부업체에 '채권추심 라이선스'를 계속 부여하는 게 맞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민의 대출 채권을 자산 재판매와 수익 창출 도구로만 취급하며 국가가 부여한 '추심 라이선스'를 정책적 상생 수단에 전혀 활용하지 않는 대부업체에 강력한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소비자 보호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대부업체로 채권이 계속 유통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해악이 금융사의 부실자산 정리 이익보다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도권 금융회사 산하의 추심업체를 중심으로 한 채권 유통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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