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500조 '치매머니' 관리 공백, 요양신탁으로 메워야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6.03.23 05:10
최병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 구조의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단순한 고령화를 넘어 국가의 존립과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초고령사회'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출산율 하락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며, 2024년 12월 23일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돌파하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 인구의 급증은 사회적 시스템 전반에 새로운 도전을 던지고 있다. 요양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전통적인 가족 돌봄 기능은 해체되고 1인 고령 가구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지 능력이 저하된 치매 환자의 경우 본인의 자산이 있음에도 이를 요양비나 생활비로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자산동결 문제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인에 의한 금융 범죄나 착취에도 취약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이렇게 관리되지 못한 채 묶여 있는 고령자의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는 2023년 154조원에서 2050년에는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평생 일군 자산이 정작 본인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쓰이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잠식되거나 사장되는 현실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NHK 다큐멘터리 '노인 표류 사회'는 고령자가 충분한 예금을 보유하고도 치매 발병 이후 금융 접근성이 차단돼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공론화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금융권은 치매가 발병하기 전에 자산 운용 방식을 설계하는 '치매안심신탁'을 도입했다. 신탁 계약을 통해 요양비와 생활비가 사전에 정해진 목적에 따라 자동 집행되도록 설계된 상품으로, 금융회사의 신탁 운용과 법률 전문가의 이중 관리 체계를 통해 횡령 위험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치매머니 관리를 위해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장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경직돼 있어 실제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도 '요양신탁' 도입이 시급하다. 요양신탁은 단순한 재산 보전을 넘어 고령자의 노후 관리와 요양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서비스 연계형 신탁'을 의미한다. 요양기관과의 계약 대행부터 서비스 중개, 그리고 투명한 비용 집행에 이르기까지 고령자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 내에서는 고령자의 주요 자산인 금전 등에 대해 관리형 신탁으로 운용할 수 없고, 요양 서비스와 연계된 신탁 사무에 대한 법적 근거 또한 미비해 규제개선이 필요하다. "지붕은 햇빛이 비칠 때 고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령사회가 더 본격화하기 전에 우리는 '요양신탁'이라는 제도적 지붕을 선제적으로 보수해야 한다.

'요양신탁'은 단순 상품 개발이 아니다. 고령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초고령사회에선 고령자의 자산이 방치되거나 착취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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