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장모님…잠수 탄 형제…상속 예금 내 몫 찾으려다 소송만 1년

김미루 기자
2026.04.27 16:19
4대 은행 상속예금반환청구소송 3년 피소 규모. /그래픽=이지혜 기자

"아내 사망 후 예금을 찾으러 갔더니 은행이 '공동상속인 전원이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동상속인은 저와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장모님인데, 제 지분만이라도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형제간 협의가 안 돼 통장 돈을 못 찾고 있습니다. 낼 세금이 많은데 은행은 제 몫만이라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민사소송 관련 커뮤니티와 법률 상담 게시판에는 상속예금 인출이 막혀 소송을 고민하는 글이 잇따른다. 형제간 갈등뿐 아니라 질병으로 공동상속 협의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도 예금을 찾지 못하는 사례다. 병상에 있는 상속인 침대를 끌고 은행에 동행해야 한단 얘기까지 나온다. 원칙적으로 상속인은 다른 가족 동의 없이도 자기 지분 예금을 찾을 수 있지만 현실은 소송이 아니면 못 받는 구조가 굳어졌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예금반환청구 소송은 최근 3년간 총 556건에 달한다. 공동상속인 중 1명이라도 연락이 끊기거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급이 막히고 상속인들이 변호사 비용을 들여 길게는 1년 이상 소송을 거치는 일이 반복된다.

법원은 '은행 예금은 각자 몫대로 나눠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각 상속인이 자기 지분만큼은 공동상속인 협의 없이도 받는 것이 원칙인 셈이다. 다만 법원은 생전에 특정 상속인이 더 많은 재산을 받았거나, 부모를 더 많이 부양한 경우 또는 유류분 문제가 얽혀 있으면 실제 상속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예외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은행들은 지급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A은행의 경우 내부 매뉴얼에도 상속인이 자신의 법정 지분만큼 인출할 수 있다고 명시했지만 분쟁이 없는 경우에 한정된다. 문제는 분쟁 여부를 영업점 직원이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질 것이 뻔한 소송을 치러 상속 예금을 정리하고 있다.

리스크 피하려다 비용 키운 은행…금감원도 "절차 간소화" 권고
상속예금, 왜 바로 못 찾나. /그래픽=이지혜 기자

은행에도 이런 관행은 부담으로 돌아온다. 상속인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지급 지연을 문제 삼아 채무불이행 수준인 최대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인정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피하려던 대응이 오히려 비용과 행정 부담을 키우는 역설적인 구조다. 은행은 이를 피하기 위해 재판 전 공탁으로 책임을 넘기거나, 소장을 받은 뒤 조정 절차에서 합의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당국도 소비자들이 상속 재산 인출에 불편을 겪는다고 보고 예금 인출 절차 간소화를 권고했다. 금융감독원은 2024년 7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등 9개 금융업 협회와 함께 300만원 이하 소액인 경우는 상속인 중 1명의 요청으로도 자기 몫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다만 300만원 초과 금액은 여전히 공동상속인 전원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송을 당하면 은행이 대부분 지는 경우가 많지만, 만약 상속인 간에 분쟁이 있었다면 예금을 돌려준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상속인들 사이 분쟁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은행 직원이 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법원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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