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올해도 주주총회를 마치고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2023년 회장에 취임한 후 1년 뒤인 2024년부터 시작해 올해가 세번째다. 서한엔 주주환원 같은 밸류업 계획도 담겨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풀어내는데 집중돼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어떤 위치에 있고 그래서 어떤 리스크가 있고, 반대로 어떤 분야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지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인다.
진 회장은 매년 서한을 보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출 증가율, 순이자마진, 대손충당금, 부실율 등 재무적 수치만이 아니라 "CEO가 각종 사안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며 회사를 이끄는가는 매우 중요한 투자정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기홍 JB금융 회장은 매 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 직접 나선다. 2019년 3월 회장 취임 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JB금융의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회장의 컨퍼런스콜 역시 CEO가 어떤 방향으로 그룹을 이끌어가고 있는지를 시장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JB금융은 자산 규모는 물론 이익 규모에서 4대 금융그룹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JB금융의 주가상승률(김 회장 취임 후 370%)은 4대 금융을 압도한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는 주주의 99.7%가 그의 연임에 찬성했다.
여기까지다. 금융그룹 회장들이 시장과 직접 소통하는 사례는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수시로 해외 IR(투자설명회)에 나서지만 대중이 회장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금융당국이 주최하는 공개회의에 참석하더라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회장님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취임할 때 한번 뿐이다. 회장님들의 모습은 봉사현장이나 회의 참석을 전하는 보도 사진에서나 볼 수 있다.
과거엔 금융권에 스타 CEO들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금융그룹 회장님들은 '은둔형 CEO'가 됐다. 대통령의 모든 행사가 생중계되는 시대다. 국무회의나 타운홀 미팅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전국민에게 전달된다. 대통령만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대기업 회장님들도 셀럽이 됐다. 회장님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기업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된다.
이재명 정부 들어 금융지주 회장들은 개혁의 대상에 올라 있다. 대통령은 "부패한 이너써클이 은행장 했다가 회장 했다가 10년, 20년씩 해 먹는다"며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비판했다. 금융당국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테스크포스(TF)를 꾸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외이사들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쉽게 연임할 수 있는 구조라는게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개선안은 회장의 연임을 깐깐하게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주 주천 사외이사를 늘리고 주총에서의 주주 동의 요건을 강화해 주주들이 직접 회장을 뽑도록 하는 방안이다.
회장 선출에 주주의 권한을 확대한다지만 정작 주주들은 회장을 모른다. 소통하지 않는 CEO를 주주는 무엇으로 평가할까. 실적? 실적만 좋으면 상관없다면 지금의 제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도 금융그룹은 시장과의 소통보다 대통령이 X에 공개적으로 칭찬해줄 사안이 뭐가 있을지 찾는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정권의 뜻에 따라 그룹 회장이 바뀌고 지배구조가 통째로 흔들린 경험이 있기에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기댈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시장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