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중국 전기차 공습 (上)

중국이 한국 전기차 시장을 뒤흔든다. 국내 기업은 엄두도 못 낼 '저가'를 무기로 시장에 빠르게 침투, 올해 신규 전기차의 40%는 중국산이 점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국·유럽과 같은 규제 장벽을 세우거나 국산 우대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불과 수년 사이 한국 전기차 시장을 중국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3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신규 등록된 전기 승용차 총 7만78대 중 36.5%는 중국산(2만5595대)이다. 지난해 1분기(21.7%)와 비교해 1년 사이 14.8%포인트(p) 뛰었다.
올해 1분기 중국산 전기 승용차 점유율은 지난해 연간(38.0%)보단 낮지만 올해도 연간 기준으로 집계할 경우 40%를 훌쩍 넘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승용차와 승합·화물·특수를 모두 포함한 중국산 전기차의 비중은 작년 연간 기준으로 33.9%였는데 이 역시 올해 연간으로 40%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종전까지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 확대를 주도한 것이 중국 공장에서 제조·수입한 테슬라 모델이었다면 올해부턴 '중국 브랜드'가 치고 나가는 형국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집계에 따르면 BYD는 올해 1분기 국내에서 3968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분기(10대) 대비 400배 가까이 늘었다. 여기에 중국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는 이달 서울 강남구에 1호 전시장 문을 연다. 샤오펑, 체리자동차의 한국 진출도 임박했다.
치열한 내수 경쟁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유독 한국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로 '낮은 진입 장벽'이 꼽힌다. 미국·유럽은 정책적으로 중국차 수입을 견제하고 있고, 일본은 전기차 생태계 조성이 늦다 보니 수입차에 개방적이면서도 규제가 느슨한 한국이 '만만한 시장'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국내 업체가 가격·품질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잉 생산으로 이미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낮아진 중국 브랜드와 가성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기차 업계 공통 지적이다.
국내 자동차 기업 고위임원은 "중국 브랜드는 자국 내 과잉 생산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보조금까지 받는 것으로 추정돼 국내 기업이 가격 경쟁력에선 이길 수가 없다"며 "정책적으로 중국의 공세를 견제하지 않는다면 향후 3년 내 국내 전기차 시장은 완전히 장악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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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으론 중국산을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품질은 여전히 한국 전기차가 낫지만 차이가 크다고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 자동차의 유일한 단점은 '중국산'이란 점인데 요즘엔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국내 자동차 기업 관계자의 이 말은 우리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 부를 만큼 전기차 구매가 저조했던 가장 큰 원인은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가 저가 모델을 쏟아내며 국내 시장의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BYD가 국내에 출시한 2450만원(세제 혜택 적용, 보조금 적용 전 기준)의 소형 전기 해치백 'BYD 돌핀'이 상징적인 모델이다.
국내 업체도 전기차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저가 경쟁이 본격화한 후 기아가 3400만원대의 'EV5 스탠다드'(트림 '에어' 기준, 세제 혜택 등 포함)를 출시하는 등 국내 기업의 '안방 사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국내 기업이 중국 브랜드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 지적이다. 중국은 경쟁 과열, 과잉 생산으로 자국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이미 낮아졌고 이런 현상이 수출 시장에 전이됐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주요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해 생산 단가가 크게 낮아졌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세계 주요국 정부는 자동차가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산업임을 고려해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10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사실상 수입을 원천 봉쇄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국내 산업 전문가들이 저술한 '차이나 비즈니스 트렌드 2026'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2023년 말 착수한 반(反)보조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10% 관세에 더해 업체별 17.8~45.3%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캐나다는 2024년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 전기차를 견제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7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던 새로운 보조금 지급기준이 중국 전기차 '진입 장벽'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기준은 국내 산업 기여도를 고려해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해 국산 전기차에 유리한 제도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수 특정 기업에 보조금이 집중돼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재검토에 착수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자칫 잘못하면 국제사회에서 보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중국 자동차의 '안방 점령'을 막기 위해 자동차 수입 관세를 일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경우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미국·EU 등에 적용되는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고, 중국 전기차의 진입 장벽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방안 역시 국제분쟁을 초래할 수 있어 현실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나온 대안이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다. 기업이 국내에서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그동안 세제 혜택이 R&D(연구개발)·시설투자에 집중돼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고안됐다. 중국을 포함한 수입차 브랜드는 일부를 제외하면 국내에 생산 거점이 없기 때문에 이 제도는 국내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국내 생산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일종의 세제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며 도입 의지를 밝혔다. 이미 많은 여야 의원이 이 제도 도입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부는 제도 도입 여부와 세부 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7월쯤 나오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세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을 담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가 세액 공제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고려해 전기차를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국내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업계가 일제히 "전기차도 국내생산촉진세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생산촉진세제는 이 대통령이 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도입을 약속한 것인데 전기차를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국가 경제 발전과 안보 관점에서 반드시 국산 전기차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