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아무도 준비하지 않은 8월 20일 '종이서류' 시대

김도엽 기자
2026.07.28 17:17
스크래핑 금지를 둘러싼 기관별 입장과 대응/그래픽=윤선정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2일 서울 잠실 광고회관에 300명이 넘는 금융회사 관계자들이 몰렸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연 '스크래핑 금지' 설명회였다. 준비한 자리가 부족해 서서 듣는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 예정된 시간을 넘긴 뒤에도 참석자들은 줄을 서 개별 질문을 이어갔다.

현장의 분위기는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벌어질 혼란에 대한 불안이었다.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에 따라 내달 20일부터 스크래핑이 금지된다. 지금까지는 금융사가 고객 동의를 받아 국세청, 정부24, 법원 등 기관에서 자동으로 가져오던(스크래핑) 소득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 등기부등본 등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개보위는 대신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가져오도록 했다.

API가 보안에 유리하다는 취지는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준비 과정이다. 시행령은 지난해 6월 예고됐다. 1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개보위는 "API를 구축해야 한다"는 보도자료만 낼 뿐, 정작 기관의 API 구축 현황은 챙기지 않았다. 당장 한 달 앞으로 시행이 다가왔지만, API 구축은 이뤄지지 않았다. 엄청난 혼란이 예상되자 개보위는 이달 말까지 금융사의 신청을 받아 '대신 직접 기관과 사전협의해 스크래핑을 API 구축 전까지 임시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법원은 스크래핑을 전면 금지하고 사전협의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체적으로 가족관계등록법 등을 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법원은 정작 그동안 '기존 법' 아래서 스크래핑이 이뤄지도록 놔둔 이유에 관해선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당장 혼란이 눈에 보이는데 '우리 알 바 아니다'라는 태도다. '내 소관 법이 아니'라며 대응을 미룬 금융위와 금감원도, 여러 부서 간의 책임을 떠넘긴 금융사들도 피해자일 수만은 없다.

피해는 금융소비자 몫이다. 대출받기 위해 가족관계·혼인·기본증명서 등을 직접 발급받아 제출해야 하고, 증명서를 토대로 다자녀 우대금리나 신혼부부 특별대출처럼 금융사가 먼저 찾아주던 혜택도 소비자가 알지 못하면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사는 제출받은 서류를 수기로 확인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심사 기간은 길어진다. 늘어난 비용은 금리 등 가격에 반영된다. 알아서 혜택을 찾아주던 '포용금융'이 '아는 사람만 혜택을 받는 금융'으로 후퇴하는 셈이다.

지금이라도 범정부 차원에서 조정에 나서야 한다. 특히 정책을 설계한 개보위가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 법원이 우려하는 개인정보 문제를 해소할 현실적인 명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함께 움직여야 하는 만큼 국무조정실이나 국회 등 상위 기관이 나설 필요도 있다. 각 금융협회도 목소리를 낼 때다. 지금처럼 개별 금융사가 각자 대응해서는 시간도, 협상력도 부족하다.

설명회장은 빈자리가 없었지만, 대책은 여전히 빈자리로 남아 있다. 소비자가 10년 전처럼 종이 서류를 들고 금융사를 찾아다니는 혼란을 겪고 나서야 움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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