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부실 금융회사의 정리 기간을 현행 약 150일에서 3~4일로 대폭 단축하는 '금융회사 신속정리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금융회사의 부실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으면 경쟁입찰과 주주총회 등 절차를 생략하고 선제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위는 29일 이같은 내용의 '금융회사 신속정리제도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행 금융회사 정리제도는 적기시정조치를 거친 뒤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정리처분을 내리는 단계적 구조다. 상법상 이해관계자 보호 절차와 국가계약법상 입찰 절차 등도 거쳐야 해 부실 징후 포착부터 계약이전까지 통상 150일가량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정리비용이 오르고 예금 인출 정지가 장기화해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저축은행 사태 당시 30개 저축은행의 부실 규모는 부실 결정 이후 약 1.2배로 증가했다. 당시 투입된 예금보험기금 약 27조원을 고려하면 부실 확대에 따른 추가 비용은 약 3조9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미국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4일 만에 가교은행을 설립해 예금 전액을 이전했다. 영국도 3일 만에 SVB 영국법인을 HSBC에 매각해 핵심 금융서비스의 중단 없이 정리를 마쳤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신속정리제도의 적용 대상은 농·수협을 제외한 은행, 재보험사를 제외한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금융지주회사다. 여신전문금융회사와 자산운용사, 신탁사 등은 제외된다. 농·수협은행과 상호금융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적용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신속정리제도는 예외적인 위기 상황에서만 발동된다. 금융회사가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상태에 있고, 이로 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하거나 금융시장 안정이 현저히 저해될 우려가 있어야 한다. 기존 적기시정조치 등으로 위기를 막을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라는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신속정리 대상 지정은 금융위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신속정리 대상으로 지정되면 금융당국은 영업정지와 임원 직무정지, 관리인 선임을 비롯해 계약이전, 제3자 인수, 주식 소각·병합, 인·허가 취소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관련 절차도 대폭 간소화한다. 국가계약법상 경쟁입찰과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 상법상 이사회·주주총회 결의, 반대주주 주식매수 청구, 채권자 이의제출 절차 등을 생략할 수 있다. 최대 90일이 걸리는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심사도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사전협의로 대체한다.
예금보험공사의 자산·부채 실사는 1~2일 내 잠정평가로 진행하고 사후에 확정 실사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 부실 포착부터 계약이전까지 150일이 걸리던 정리를 주말을 포함해 3~4일 내 마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신속한 정리 과정에서 제한될 수 있는 주주와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한다. 신속정리로 발생한 손실이 일반적인 청산·파산 절차를 거쳤을 때보다 클 경우 그 차액을 예금보험기금에서 보전한다. 금융위는 정리처분 후 6개월 이내에 국회 정무위원회에 정리 내용과 결과 등을 보고해야 한다.
금융위는 다음 달 2일부터 12월14일까지 42일간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관계부처 협의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