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요? 그 수치 정확한 건가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취재원의 말이 사실인지 재차 물었다. 국내 레미콘 산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간 시장규모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너무 뜻밖이어서다. 너무 큰 숫자여서 선뜻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이란다.
전국적으로 800여 개의 업체가 난립하는 업종. 하지만 그 대부분이 영세 중소기업인 업종. 그래서 중소기업적합업종(이하 중기적합업종)으로 묶어 덩치 큰 대기업의 공세로부터 보호 중이라는 국내 레미콘 산업의 진면목이 준 첫인상은 '당혹감'이었다.
시멘트에 자갈 등 골재와 물을 섞으면 콘크리트가 돼 서서히 굳는 '수화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완전히 굳기 직전의 액체와 고체 중간 상태인 것을 레미콘이라 부른다. 콘크리트는 한 번 시공되면 최고 몇 백 년 간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국민의 편익, 안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기적합업종 지정을 둘러싼 대·중소 레미콘 업계의 대립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만 도식화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레미콘 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국내 레미콘 공장의 가동률이 연평균 30%가 채 안 될 정도로 시장은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업체들은 기술 개발을 통해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다 가격경쟁에 골몰했다. 중기적합업종이라는 우산으로 대기업의 공세를 차단한 뒤 나눠먹기식 물량확보에만 치중했다. 아직도 레미콘 하면 '단순', '무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이유다.
하지만 글로벌 업계는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기술 개발에 매진, 레미콘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공급업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일정 품질 이상의 레미콘을 사용하도록 하는 성능 위주의 시방서를 채택하면서 좋은 품질의 레미콘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미 유럽 등 건설, 건축자재 선진국들에서는 보편화된 방식이다. 영역 싸움에 한창인 국내 레미콘 업계는 물론 건설업계, 나아가 전 사회적으로 한 번쯤 곱씹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