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 대회인 ADT캡스 챔피언십에 후원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 막 만 30세를 넘긴 중소기업 여성 대표가 골프대회 후원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그녀가 그동안 꿈꾼 무대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참여해서다.
해조류 가공판매기업 ‘시드’를 운영하는 박혜라 대표(30·사진)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정규투어 ‘시드’에 재도전하는 프로골퍼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0년 스포츠센터를 다니다 골프를 접한 박 대표는 이후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고3 시절 전국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 대표는 이듬해 KLPGA 정규투어 골프대회 풀시드를 받으며 투어프로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통증이 그를 짓눌렸다. 정규투어 세 번째 경기에서 손목인대 손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후 3년간 지루한 재활훈련을 반복했다. 투어자격은 재활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부상 이력은 중요한 경기에서 발목을 잡았다. 2부투어 격인 드림투어에서 톱10을 꾸준히 유지하며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정적인 대회마다 고비를 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정규투어 참가자격이 결정되는 대회가 매년 이맘때쯤이었는데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의 심정처럼 긴장했던 것같다”며 “28세 마지막 대회에서 풀시드 획득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평소 골프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을 찾다 자신이 자란 지역 특산물 ‘기장미역’에 눈길이 갔다. 어업과 양식업을 한 조부와 일식 셰프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박 대표의 고향인 부산 기장군이 미역특구여서 공급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가 프로골퍼를 그만두고 미역 판매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예상대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반대가 컸다.
박 대표는 “사서 고생한다. 운동하던 애가 사업을 할 수 있겠냐. 심지어 미쳤다고까지 했다”며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우려하던 목소리는 응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필드에서 못이룬 꿈(Dream)을 바다(Sea)에서 이루겠다는 의미로 회사명과 브랜드명을 ‘시드’(SEA.D)라고 지었다. ‘바다의 건강씨앗(Seed)’이란 의미도 담았다. 문제는 자본력이었다. 골프레슨비 5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당시 20대 운동선수 출신에게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임대료가 없어 조립식 패널로 된 창고건물에 수천만원어치 해산물을 적재했는데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빗물에 안전한 건물”이라는 건물주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폭우가 들이쳐 밤새 홀로 상자를 옮기고 빗물을 막으면서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그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상했다.
다행스럽게도 청년창업자금을 받으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역, 다시마, 멸치, 다시마피클, 해초샐러드, 미역스프, 육수팩, 산모용 미역 등 제품 구성을 다양화하고 기관과 기업 사내판매 상품으로 특화했다. 골프선수 시절 네트워크가 도움이 됐지만 구매담당자와 직접 부딪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사업이 안정되자 박 대표는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골프대회 후원과 더불어 미혼모가정을 위한 지원사업인 ‘시드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머니투데이의 ‘K-STAR 수산산업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내년 3월이면 기장 반룡산업단지에 수산물 가공공장을 완공한다”며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대표 수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