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보유 발 묶여 주가 하락에도 속수무책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돌려주는 '상장 대박'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사업실패 등 투자위험을 감수하고 초기기업에 자금을 투입했던 벤처캐피탈(VC)들이 제도에도 없는 '자발적 락업(lock up·의무보유)'에 발이 묶여 상장 직후 급락하는 주가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7월 코스닥에 신규 상장(스팩 제외)한 20개 종목 중 이달 21일 종가 기준 공모가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하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피스피스스튜디오(-75.86%), 스트라드비젼(-73.92%), 한패스(-72.89%) 등 7개 종목은 공모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근본적인 원인으론 코스닥 시장 전반의 체력 저하와 공모가 거품 등이 꼽힌다. 올해 930선에서 출발해 5월 한때 1170선까지 치솟았던 코스닥 지수는 공모주 거품이 꺼지며 이달 들어 800선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시장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관투자자들 상당수가 상장 첫날 보유 물량을 대거 쏟아내고, 이는 다시 주가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상장 단계에서 부풀려진 기업 가치가 상장 과정에서 조정을 부른다는 지적도 있다. 코스피 대장주에 유동성이 집중되는 한국 증시 특성상 코스닥 신규 종목에 대한 수급이 약해 상장 첫날 주가가 올랐다 이튿날 곧바로 무너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시장을 견인할 대형주의 부재도 코스닥 자금 유입을 막는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올해 1~7월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 수는 지난해 상반기 41곳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문제는 상장 초기 주가 급락이 장기간 투자해 온 VC들의 회수 수익률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올해 상장한 피스피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다수의 VC들이 취득한 이 회사 보통주 단가는 1만원 미만으로 상장 공모가(2만1500원)보다 훨씬 낮은 값이지만, 1~3개월 의무보유를 약속한 투자사의 경우 주가 급락으로 손실이 불가피한 상태다.
한 투자사 대표는 "거래소에서 상장주관사를 통해 '창구지도'라는 형태로 락업을 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락업에 동의했다 주가가 하락을 방어하지 못해 속을 끓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초기 투자자는 취득단가가 낮아 의무보유를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느냐는 견해가 있지만 이는 손실 리스크가 큰 벤처투자의 기본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기대했던 멀티플(회수 배수)을 달성하지 못하는 투자 사례가 늘면 신규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1년 코스닥 신규상장사 74% 주가 공모가 밑"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가 9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벤처캐피탈(VC) 업계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투자금을 현금화하는 회수시장의 핵심 통로인 코스닥 IPO(기업공개)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다. 투자 확대가 제때 회수로 이어지지 않으면 최근 투자 열기가 자칫 시장 전체를 흔드는 '버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발표한 '2026년 상반기 벤처투자 및 벤처펀드 결성 동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는 8조867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3% 늘었다. 이는 벤처 호황기였던 2022년 상반기(7조6442억원)를 뛰어넘은 역대 최대 규모다. 신규 펀드 결성액 역시 33% 증가한 8조4366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반면 회수시장은 침체의 골이 더 깊어졌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6년 1~7월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스팩 제외)은 총 20곳으로 전년 동기 41곳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투자가 쏟아지는데 출구는 막힌 병목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VC 대표는 "소화장애가 심한 상태에서 음식만 계속 받아먹으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며 "부실기업 퇴출을 위한 '다사(多死)' 기준은 강해진 반면, 우량기업을 배출할 '다산(多産)' 길목은 좁아졌다"고 말했다.
투자 업계는 증시 자금이 코스피 대형주로 쏠린 탓도 있지만, 높은 상장 문턱과 심사 지연이 더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흥국증권 분석 결과 올해 상반기 상장 예비심사 승인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15일로, 예년 평균(97일)보다 20일 가량 늘었다.
어렵게 상장 문턱을 넘어도 제때 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원칙적으로 예비심사 신청일 기준 2년을 초과 보유한 VC 지분은 의무보유(보호예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한국거래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최소 1개월부터 최대 2년까지 의무보유 기간을 설정할 수 있다. 의무보유 대상이 아닌 VC 지분에 대해서도 거래소와 발행사의 요구 등을 반영해 1~3개월가량 자발적으로 보호예수를 설정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한 VC 심사역은 "이미 회수 요구 조건을 갖췄는데도 거래소 눈치를 보느라 보호예수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투자자는 상장 직후 매도하는데 VC는 자발적 보호예수 때문에 주가가 급락해도 손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투자와 회수의 비대칭성에 대한 우려는 지난 19일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2026년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 및 벤처펀드 결성 동향' 브리핑에서도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1년간 코스닥 신규 상장사 중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2곳뿐이고, 74%는 공모가를 밑돈다"며 "회수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투자 확대는 거품을 부풀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I(인공지능) 등 딥테크 분야 투자 쏠림이 몰고 올 부작용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대현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딥테크 영역은 아직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가 없어 쏠림 현상에 따른 밸류에이션 우려가 크다"며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해 IPO 등 회수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