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조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던 회사가 단 5년 만에 영업이익 5조6000억원(당시 환율 기준)의 알짜 회사로 바뀌었다. 주력업종은 가전과 반도체 등 전기전자산업에서 IT(정보기술), 전력시스템, 철도 등 사회 인프라 사업으로 탈바꿈했다.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히타치는 부활하는 일본 산업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히타치는 과감하고 신속한 대수술로 살아났다. 경쟁력을 잃은 사업은 미련 없이 털어버리고 미래 신 성장 분야에 전력을 쏟았다. 극단적 선택과 집중이 구조조정 효과를 극대화했다.
유례없는 혁신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히타치를 끝까지 책임지는 '라스트 맨'을 자처했던 가와무라 다카시 전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을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바꿨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은 아니었다. 회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전 임직원과 공유하면서 회사의 정책을 하나하나 최대한 설명했다.
히타치의 성공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한 일본 기업의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안되는 사업' 모조리 정리, 환골탈태식 구조조정
히타치는 도쿄역과 황궁 사이 마루노우치에 자리 잡고 있다. 금융회사와 대기업의 본사가 밀집해 일본 경제의 심장부로 불리는 곳이다. 근래 실적을 반영하듯 마중 나온 직원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읽혔다.
회사 입구 안내데스크에서부터 벽면, 사원증 목걸이 등 곳곳에 'Inspire the Next'(미래를 고무시키다), 'Social Innovation'(사회적 혁신)과 같은 슬로건이 붙어 있었다. 사회 인프라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더 이상 몰락하던 가전회사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히타치는 2008회계연도 7873억엔 순손실을 입었다. 당시 환율로 10조2000억원에 달하는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악의 적자 규모였다. 비주력 자회사로 물러나 은퇴수순을 밟던 가와무라가 망해가는 회사의 사령탑을 맡았다. 개인 지배주주가 없는 히타치(기관투자자가 지분 약 67% 보유)는 일흔을 바라보는 새 CEO(최고경영자)의 경륜을 믿고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경영개혁의 방향은 명확했다. 켄 미조구치 히타치 브랜드&커뮤니케이션본부장은 "도움이 될 것 같은 비즈니스는 더 크게 키우고, 안 된다 싶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고 요약했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와 가전 등이었다.삼성전자와 경쟁에서 이미 밀렸다고 판단한 사업들은 신속하게 정리했다. 2010년4월 반도체 부문을 통합해 매각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조인트벤처로 진행하던 휴대폰 사업에서 발을 뺐다.
2012년3월에는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중소형 LCD(액정표시장치) 부문을 팔았다. HDD의 경우 이익을 내고 있었지만 향후 핵심 사업이 아니라는 판단에 매각했다. 이어 8월에는 TV 생산마저 중단했다.
반면 핵심 사업으로 정한 분야에는 역량을 집중했다. 우선 2010년2~4월 IT와 플랜트 관련 5개 상장사를 100% 자회사로 전환해 상장폐지 시켰다.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인만큼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다.
거침없는 M&A(인수합병)도 실시했다. 2012년11월 영국 원자력 회사를 인수(약 890억엔)하고 2013년7월 히타치전선과 금속을 합병한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이탈리아 철도업체 핀메카니카를 2500억엔(약 2조3500억원)에 사들였다. 업계에서는 최근 7년간 히타치가 M&A에 쏟아 부은 돈만 20조원으로 추산한다.
이 과정에서 히타치의 결정은 신속했다. 중역회의에 참석하는 인원을 13명에서 6명으로 줄이고 회의는 딱 정해진 시간 내에서 끝냈다. 회의에 참석해온 켄 미조구치 본부장은 "모든 미팅은 절대 시간을 넘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무조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CEO를 비롯한 경영진은 공장, 자회사, 해외 거점을 수시로 돌면서 임직원과 주주,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왜 이런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사상 첫 해외매출 비중 50% 돌파, 글로벌화에 총력
성과는 놀랍다. 2013, 2014회계연도에 연이어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거뒀다. 2015회계연도(2015년4월~2016년3월) 매출액 전망치는 9조9000억엔(약 93조4000억원)이며 영업이익 6600억엔(약 6조2000억원)으로 또 한 번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히타치의 회복과 성장에 아베노믹스라는 외부 요인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켄 미조구치 본부장은 "금융완화와 재정확대가 겉으로 보이는 대로 잘 진행됐다"며 "특히 엔저가 수출에 큰 효과를 누리게 한 부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변신에 성공한 히타치는 글로벌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올해 해외 매출 비중을 50%로 잡았다. 이미 1분기(4월~6월) 52%를 달성해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내수를 넘어섰다.
인적 구성도 전통적 제조업체의 관념을 탈피하고 있다. 철도사업 담당 CEO는 영국인이며 그룹 중심인 히타치제작소의 사외이사 8명 중 4명이 외국인이다. 게다가 외국인 4명 중 2명은 여성이다.
켄 미조구치 본부장은 "우리는 더 이상 이사진을 '늙은 일본 아저씨'로 채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은 살아났지만…구조개혁 성공여부 관건, 거리 경기는 아직 '위축'
히타치뿐만 아니라 상당수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미쓰비시전기를 비롯해 파나소닉과 후지쓰 등이 구조조정을 일단락 짓고 수익성을 높이는 중이다. 일본 전자산업의 상징이었던 소니도 시련의 시기를 벗어나 올해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유가하락에다 기업의 수출이 살아나면서 일본의 무역적자도 크게 축소되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무역수지는 1조7251억엔 적자로 작년보다 적자폭이 5조9031억엔이나 줄었다. 전자부품 14%, 자동차 9.6% 등 주요 수출품목들의 수출액이 전년대비 일제히 증가했다.
그러나 과제도 만만치 않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개혁의 성공여부가 관건이다. 일본 기업들은 규제완화 효과 등을 아직 체감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지 한 기업가는 "구조개혁을 정권에서 좀 더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업경기 회복세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소비심리도 문제다.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일반 국민들의 경제생활은 여전히 위축돼 있다.
도쿄 최대 번화가인 아카사카에는 빈 택시가 줄지어 섰고, 쇼핑 인파로 넘쳐야할 주말 긴자거리에는 예전 같은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한 현지법인장은 "엔저 장기화로 일반 사람들의 소비생활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며 "거리에서 느껴지는 경기는 전체 경제 지표와 또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