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나라 독일은 철학의 나라다.
고대 그리스가 철학을 잉태했다면 독일은 영국, 프랑스와 함께 고대 철학을 성장시킨 국가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를 비롯해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임마누엘 칸트, 게오르그 헤겔, 칼 마르크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은 세계 철학사의 큰 획을 그은 독일의 철학자들이다.
철학은 인간의 머리 속 관념을 구체화하고 이를 언어화해 일반 대중을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철학자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철학의 핵심 주제인 인간·존재, 행복(幸福), 선(善), 정의(正義) 등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심도 있게 논의해 해법을 제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철학자들이 쉽게 설명한다고 하지만 철학의 깊이는 그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는 위엄도 내포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도 스콜라 철학이니, 계몽주의니 전지주의 철학이니, 관념론이니, 유물론이니 등등의 철학적 용어의 문턱을 겨우 넘을 정도로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게 또한 철학이다.
그런 영향을 받았을까. 독일의 국민차(Volk: 국민+s 합성어 결합요소+wagen: 차)로 불리는 폭스바겐의 언어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많다.
지난 14일 환경부의 판매중지 등 행정처분 예고와 관련해 자사의 홈페이지에 폭스바겐코리아가 올린 '고객 안내문'이 한 예다.
"이번 처분예고는 차량을 수입하면서 제출한 인증서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고객 여러분이 현재 운행 중인 차량의 안전이나 성능과는 무관한 사항입니다."
이 안내문은 검찰이 환경부의 고발에 따라 올초부터 폭스바겐 수사에 착수해 정부로부터 차량 인증을 받기 위해 배출가스, 소음, 연비 등에서 총 139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사실을 밝혀낸 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로 검찰이 환경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했고, 그 내용이 폭스바겐에 통보된 것. 2007년부터 국내에 판매된 32개 차종 79개 모델이 대상이다.
이런 정부의 조치에 대해 폭스바겐은 '환경부의 행정처분 예고와 관련하여 고객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안내문과 8개의 질의응답 자료에서 수차례에 걸쳐 '인증서류 문제일 뿐 차량의 안전이나 성능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인증서류'와 '성능'이 무관하다는 폭스바겐의 설명은 폭스바겐의 '독특함'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독일의 철학적 답변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차량의 성능은 실제에 존재하는 것이고, 인증서류는 단지 종이 위의 잉크에 불과한 허상이라는 얘기인가.
유물론적으로 보면 실제 존재하는 것은 폭스바겐 차량에 들어가 있는 엔진이고, 그 엔진은 제작된 이후 그 성능이 변하지 않은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게 폭스바겐의 주장일까.
또 관념론적으로는 엔진의 실체와 상관없이 인증을 받기 위해 제출한 관념적 숫자가 엔진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관념론자들에게 반박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이번 행정처분의 근거가 된 인증서류는 폭스바겐이 차량의 현물 성능을 표시한 투영체다. 인증서류는 엔진성능의 거울이다. 따라서 인증서류와 성능이 무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은 차를 살 때 차량 엔진 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숫자로 이뤄진 관념의 척도인 인증서의 결과를 성능으로 인식한다.
성능이 100이라고 적힌 숫자를 통해 차를 인지한 소비자에게 80의 성능이 있는 엔진의 차를 팔았다면, 이것은 소비자가 인식하는 성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를 부인하는 것(인증서류 조작과 성능이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체가 일그러져 있어도 그림자만 똑바로 서 있으면 정상이라는 궤변과 같다. 폭스바겐은 동굴의 입구를 등지고 서서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