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군산조선소에서 마지막 배가 떠났다

군산(전북)=안정준 기자, 박준식 기자
2017.07.05 09:13

현대중공업 무기한 폐쇄결정…2015년 이후 조선 수주절벽 2년만에 지역경제 '사형선고'

지난 4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건조된 마지막 선박인 11만4000톤급 유조선 '이글라이언'이 운무를 뚫고 출항하고 있다./사진=군산(전북) 박준식 기자

4일 오후 전북 군산. 장맛비가 잠시 그쳤지만 시 전체가 안개로 가득하다. 비응도동현대중공업군산조선소에는 열 명 남짓의 임직원이 잠시 모였다. 해무가 가득한 바다를 향해 선 사람들은 마지막 진수식을 헛헛한 표정으로 맞았다.

축구경기장 2개 크기의 배가 짙은 안개 너머로 나아가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이종천 대외협력부장은 "(떠난 배는) 11만4000톤급 유조선 '이글라이언'"이라며 "울산을 거쳐 7월 말에 아시아 선주에 인도된다"고 설명했다. 이 배는 군산조선소가 가동중단에 들어간 지 사흘 뒤인 이날 도크를 떠난 마지막 물량이었다. 배를 만드는 도크가 이날을 끝으로 모두 비게 됐다.

원래 진수식에선 뱃머리에 샴페인을 깨뜨린다. 하지만 이날의 진수는 축제가 아니라 작별의 의미인지라 행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관리 인력 몇 명이 떠나는 배를 지켜보며 각자 뭐라고 읊조릴 뿐이었다. 다들 현실을 받아들인 터라 탄식도 없었다. 조선소엔 만약을 위해 설비 보수를 담당할 최소 인원(50명)만 남았다.

한때 50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붐볐던 이 조선소는 지난 7년간 70여 척의 배를 만들어냈다. 조선 시황이 좋았던 2012~2015년엔 매년 1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최대 규모인 130만톤 급 도크와 1650톤급 골리앗 크레인은 호남 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군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조선소는 시 지역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일감이 떨어진 조선소가 문을 닫기로 하면서 지역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근 오식도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명자(가명)씨는 '마지막 배가 떠났다'는 말에 "우리가 이 골목에 남은 마지막 백반집"이라며 "반년 전부터 (조선소) 폐업이 예고돼 사람들이 하나둘 군산을 떠나면서 주변 식당과 경제시설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의 시민들이 자주 찾는 백반집들 마저 조선소 폐쇄의 한파를 맞았다. 식당 주인 정모씨는 "조선소가 폐업한데다가 인근 한국지엠 공장도 일감이 없어 일주일에 이틀 이상 휴업을 한다"며 "가뜩이나 어려운데 지난해 말부터는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공무원 손님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소와 거리가 있는 시청앞 식당들에도 초저녁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인적이 드문 모습이다. /=박준식 기자

조선소 직원들이 거주하던 숙소와 이들이 이용한 식당, 카페, 주점 등이 밀집된 오식동 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곳곳에 임대, 매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원룸 월세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방은 절반 이상이 비었다. 상인들은 타지로 떠나고 있었다. 인근 까페 주인 박모 씨는 "조선소 가동 중단이 (상권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군산 시내 서민 식당들 마저 저녁시간 대에 손님이 차지 않고 있다. 이 식당은 한때 8000원~1만원짜리 게장 백반으로 연매출 3억원을 올려 방송에 나오기도 한 곳이지만 올해부턴 손님이 부쩍 줄어 매출이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준식 기자

현대중공업은 일감절벽으로 인해 군산조선소를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신규수주는 2010~2015년 연평균의 16%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는데 그 여파가 군산에 유독 혹독하게 미친 것이다.

올해 수주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자신들의 주요 사업장인 울산 조선소를 중심으로 도크를 채울 계획이다. 울산 도크가 모두 차고 나서야 군산의 재가동 여부를 타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 측면에서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비용절감과 규모의 경제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군산시와 지역 경제는 야속하게만 느끼는 듯했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조선소 8개 도크 중(특수선 제외) 2개를 이미 폐쇄했다는 입장이다. 그 다음으로 군산 작업장을 차례로 비워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일감이 아직 모자라) 울산도 1~2개(도크)를 추가로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의 올해 연말 수주잔고(건조 잔여물량)는 지난해 수주절벽의 영향으로 연초 대비 절반으로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

일감이 언제쯤 차오를 수 있을까. 회사 관계자들은 "기약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올해 수주가 2015년 수준으로 도약한다고 해도 최소 1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군산 조선소의 재가동 시점은 이렇게 가늠할 수가 없다. 지역 시민과 상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고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지만 상황은 비관적이다.

정부는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일 열린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군산 조선소 폐쇄가) 조선업 불황과 일감부족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지역 경제나 주민들의 생활에 가졌던 의미를 생각할 때 매우 가슴 아프다"며 "우선 시급한 중소 협력업체 및 근로자 지원대책과 함께 지역주민 생활여건 개선을 위한 방안 등을 (지원 대책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산 시내 소고기 식당과 횟집 등 비교적 값이 높은 음식점은 조선소 폐쇄와 김영란법 시행으로 손님이 끊겨 밤 9시 전후에도 일찍 문을 닫고 있었다. /=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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