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45분 못 버텨…" 소리가 죽는 곳, 삼성 美오디오랩

로스앤젤레스(미국)=심재현 기자
2018.01.15 11:00

삼성 사운드바 1위 이끈 '음악벌레'들의 세상 하나뿐인 무기… <br>세계 유일 직접 제작한 무반향실·청음실 '오디오 경쟁력' 실감

삼성전자 미국리서치 오디오랩의 앨런 드밴티어 상무가 무반향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 발렌시아에 자리잡은삼성전자오디오랩(오디오 전문 연구소)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 소리가 죽으러 가는 곳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삼성전자 미국리서치 오디오랩의 무반향실을 다녀왔다.

이곳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첫 공개다. 무반향실에 들어가기 위해 각종 스피커가 속살을 드러내 주렁주렁 매달린 개별 작업실을 지나자 두께 30㎝의 거대한 철제 문이 나왔다. 영화 속에서 봄직한 핵 방공호가 떠올랐다.

오디오랩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문 안쪽으로 들어가니 순식간에 귀가 먹먹하다. 무반향실에 대해 설명하는 앨런 드밴티어 오디오랩 상무의 목소리가 베개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반향실은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삼각기둥 모형으로 사방이 채워져 있다. 소리 흡수에 가장 탁월한 유리섬유가 소리의 울림(반향)을 거의 완벽하게 흡수한다.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문을 닫았더니 외부 소음과 완벽하게 차단된 딴 세상이다. 무음의 공간. 일부러 고함을 질러도 소리가 순식간에 죽어 언제 고함을 질렀나 싶었다. 사람이 무반향실에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틴 게 45분이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이곳을 사운드바와 오디오 스피커, TV 스피커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 공간으로 사용한다. 다른 기업의 무반향실에선 로봇이 스피커 성능을 점검하지만 삼성전자는 로봇 대신 90도 각도로 움직이는 'ㄷ'자 모양의 얇은 막대에 마이크로폰을 달았다. 상대적으로 큰 로봇에 부딪히는 소리의 반향까지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스피커를 테스트하는 동안엔 마이크로폰이 달린 'ㄷ'자 막대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90도 움직이고 마이크로폰도 'ㄷ'자 막대의 좌우로 움직인다. 무반향실 밖에서 'ㄷ'자 막대와 연결된 줄을 감아올리는 장치가 달팽이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디오랩에선 '스네일'(snail)이라고 부른다. 오디오랩이 특수제작한,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장비다.

무반향실 중앙에 자리잡은 스피커도 360도 회전하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무반향실 내부 어느 위치에서도 빠짐없이 스피커 음향을 테스트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2015년 내놓은 '무지향성 무선 360 오디오'가 이런 연구의 결과다.

이 제품은 통상 스피커 정면에서만 입체음향을 들을 수 있는 일반 오디오와 달리 어느 곳에 있어도 소리의 간섭 없이 입체 음향을 들을 수 있다. 무반향실을 나와 찾은 청음실에서 직접 이 제품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디오를 켜고 청음실을 맘껏 거니는 동안 어디에서든 또렷하고 풍부한 음향이 들렸다.

드밴티어 상무는 "2010년 이후 CD나 디스크 같은 저장장치형 오디오 기기보다 스트리밍 음악을 즐기는 무선기기가 늘고 TV 시장에서도 초대형 고화질 영상에 맞는 스피커 역량이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자리잡는 추세"라며 "세계 최고의 음향 기술력 내재화라는 목표 아래 2014년부터 오디오랩을 본격 가동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발렌시아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디오랩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는 TV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 컨슈머리포트지의 음질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액설런트'(Q7·Q8 시리즈 12개 모델)를 받았다. 올해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에서 선보인 슬림형 사운드바(모델명 NW700)는 두께를 기존보다 41% 줄이면서도 저음을 내는 우퍼 4개를 포함, 총 7개의 스피커를 내장해 풍부한 음향을 내는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오디오랩이 독자개발한 '디스토션 캔슬링' 알고리즘이 스피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예측해 음향 왜곡을 줄이고 우퍼의 움직임을 조정해 웅장한 베이스음을 구현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날도 오디오랩 한쪽 연구실에선 레이저 장비를 이용해 고음·저음에 따라 살아있는 것처럼 울렁이는 우퍼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퓨처소스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사운드바 시장은 지난해 31억9000만달러에서 올해 35억1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23%(독일 시장조사기관 GFK 조사)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인수한 글로벌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하만은 마크레빈슨을 비롯해 하만카돈, AKG, 인피니티, JBL 등 다양한 오디오 브랜드를 갖고 있어 향후 하만의 오디오 기술력과도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오디오랩은 총 264평 규모로 무반향실과 청음실 등 업계 최고의 시설을 갖춘 음향기술 전문 연구기관이다. 4명의 오디오 분야 박사급 인력을 비롯해 오디오 엔지니어, 뮤지션 등 오디오 분야 전문가 19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의 오디오 분야 경력을 합치면 300년이 넘는다. 평균 경력이 15년 이상인 셈이다.

연구진의 경력도 다양하다. 로스앤젤레스 로컬밴드 '하이'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앨범을 4개 낸 연구원이 있는가 하면 1달에 1번씩 지역을 돌면서 1980년대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직원도 있다.

드밴티어 상무는 "로스앤젤레스는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이자 음악의 고향"이라며 "컴퓨터만 파고드는 공부벌레가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삼성 오디오랩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오디오랩 직원이 오디오랩 시설과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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