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SK-LG 배터리 소송, 기술 소송사의 전환점

황시영 기자
2019.10.24 18:30

[기술유출 소송시대]②'국가 대 국가'→'국내 기업간 소송으로 전환…소모적 소송 장기화 우려도

SK-LG의 배터리 소송전에서는 '기술(기밀) 유출'과 '정당한 스카우트'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어느 선까지가 '정당한 스카우트'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기술·인력빼가기 소송전이 특허분쟁으로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싸움은 올 4월 LG화학이 '인력빼가기를 통한 영업비밀(trade secret) 침해'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2017년 이후 2년간 LG화학 배터리 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는데, '기술탈취를 위한 인력 빼가기'라는 LG화학과 '낮은 처우에 실망한 자발적인 이직'이라는 SK이노베이션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양측은 차례로 '특허 침해' 제소를 내면서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 대 국가'에서 '국내 기업간 기술유출' 다툼으로=역사적으로 보면 1970~80년대 중화학공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 시대에 해외 기술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과 빈번한 소송 및 갈등이 있었다.

한국의 산업 성숙도가 올라가면서 2000년대 이후에는 우리 기업 기술을 빼내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술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기술유출과 인력 스카우트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SK-LG 소송전은 한국 제조업 기술 소송사(史)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국가' 대(對) '국가'의 개념이었는데, 국내에서 기업들이 기술 유출을 놓고 이토록 첨예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퇴직자의 SK하이닉스 재취업을 둘러싸고 '전직(轉職)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도 기술유출 갈등의 한 사례로 꼽힌다.

한 변호사는 "개인의 이직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며 "기술 성숙단계에 따라 국가 내부에서의 소송도 결국 감내해야 할 부분이 됐고, 그 과정에서 파일 등 핵심자료를 '의도적으로' 빼갔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SK, 왜 미국에서 싸우나=양사 갈등은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한국 기업간 다툼이다. LG화학 본사는 서울 여의도에, SK이노베이션 본사는 서울 광화문에 있어 양사간 거리는 7㎞가 되지 않지만, 분쟁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LG화학이 최초 소송을 미국에서 제기한 것은 미국 ITC 및 연방법원이 적용하는 '증거개시(Discovery) 절차'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디스커버리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의도적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 손해에 더해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로 받는 제도다.

둘 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로 상대에게 줄 수 있는 타격이 크다. 미국에서의 소송으로 양사 모두 '강대 강' 대결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그동안 ITC 소송은 대개 양측 '합의'로 종결돼왔다. 업계 관계자는 "한 공장을 그대로 베껴와 똑같은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닌 이상 ITC에서는 합의를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ITC 역시 합의를 종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SK는 조지아 배터리공장을 포함해 5조원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LG도 미시건공장에 이어 배터리 2공장을 GM과 협업해 건설하기로 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앞두고 있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막대한 소송비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어서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양사 모두에게 소모적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디스커버리 절차를 밟을 경우 한국이 선도하는 배터리 기술력의 해외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와 관련, 양측이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람을 뺏긴 기업은 기술을 유출당했다고 주장하고, 사람을 뽑아간 기업은 이직의 자유를 보장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며 "소송 당사자인 SK와 LG의 입장에선 힘든 과정이겠지만 시장의 입장에서는 좋은 사례를 하나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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